겨울왕국-1

겨울왕국(Frozen)

엘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애니메이션은 명백히 소수자, 특히 놀라울 정도로 세련되게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은유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작중에서 엘사가 “나는 여자가 좋다”거나 “나는 여동생이 좋다”거나, 그런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엘사의 “마법”이라는 은유로 표현된다. 디즈니는 은유를 꽤나 세련되게 쓸 수 있는 집단이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히로인들을 근친동성으로 엮을 패기같은 것은 부리기에는 한없이 보수적이겠지만 – 아니, 보수성을 넘어서 근친은, 일부러 충격적 문제작을 만드는 게 아닌 이상 함부로 휘두를건 아니긴 하지요. 🙂 – 그래도 고무적이지 않나 싶었다. 예컨대 내가 “뮬란”을 봤을 때가 1998년이었다. 금발 바비인형같은(….이라고 말하면 디즈니 히로인들에 대한 모욕일지 모르지만 요즘 디즈니 프린세스 마케팅 해대는 것 보면 저런 소리가 안 나올 수도 없지.) 히로인이 아닌,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 소녀가 주인공인 디즈니 애니라니. 물론 의상고증이 일본과 중국이 섞여있고 몇가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걸 보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같은 보수적인 매체에서 저렇게 동양인 히로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중국의 위상이 올라갔거나, 혹은 미국내 동양인 비율이 올라간 것으로 인식을 했다. 🙂 티아나가 나왔을 때는 디즈니가 확실히 보수적이긴 보수적이군(참 늦게도 했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성소수자 소녀에 대한 함의가 들어간 애니메이션이라니. 내가 완전히 해석을 잘못한 게 아니라면 지금의 한국은 디즈니 프린세스들보다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게 아닌가.(…..그렇습니다. 저는 그 좋아하는 미녀와 야수의 영리하고 책 좋아하는 벨 조차도 노란 드레스를 입고 디즈니 프린세스 목록에 들어간 순간부터 아이큐가 30정도 저하되어 보이는, 디즈니 프린세스 편견 보유자입니다. 음.) 아니, 농담이 아니고. 그만큼 시장이 발달했고, 표현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면, 저 보수적인 디즈니에서 이런 걸 괜히 넣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공주가 “마법”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 “마법”으로 인해 여동생에게 충격을 주었다. 왕과 왕비는 (공주에게 마법을 가르칠 수 있는 다른 종족을 초청하여 마법 쓰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는 대신) 공주를 방에 가두고 사람들이 공주가 “나쁜 비밀인 마법”을 쓰는 것을 알지 못하도록 “착한 아이가 되어라, 네 자신을 숨겨라”하고 말하며 사람들로부터 차단했다. 왕과 왕비가 죽고 어른이 되고 대관식을 맞은 공주는 마침내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 순간을 맞고 자신의 “나쁜 비밀”을 사람들이 눈치챌까봐 두려워한다. 마침내 동생에 의해(결혼하겠다고 폭탄선언+장갑 붙잡음) 장갑이 벗겨지며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나고 공주는 떠나 혼자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여동생에 의해 “그 마법을 다스릴 힘은 사랑”임을 깨닫고 그녀는 자신의 “나쁜 비밀”이었던 마법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게 정말로 마법에 대한 이야기면요, 애초에 동생의 마법을 풀어주었던 트롤들을 초빙해서라도 공주에게 마법 쓰는 법을 가르쳤겠지.
이걸 같은 구조로 바꿔보면 이렇게 된다.

어느 여자아이가 동성애 성향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런 것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어떤 말을 하거나 책을 읽어 여동생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다. 부모는 여자아이와 여동생을 격리시키고 여자아이에게 “착한 아이가 되어라, 네 자신을 숨겨라” 하고 말하며 사람들로부터 격리한다. 대학에 가거나 어떤 이유로 부모와 헤어져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게 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려고 필사적으로 애쓰지만, 동생의 실수로 그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고 몇몇 사람이 손가락질하자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도망치고 숨어서 예술을 하든 뭘 하든 자기만의 성을 쌓고 다른 사람들을 차단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동생에 의해 이해받고 자신감을 되찾은 여자아이는 결국 커밍아웃을 하고 자신의 성향이 잘못된게 아니라 사랑의 형태일 뿐임을 깨닫는다.

…….같은 이야기네. “마법”만 이렇게 바꾸면. 왜 왕과 왕비가 마법을 가르칠 생각은 않고 애를 가둬놓고 사람들의 접촉을 막았는가를 생각하면 나오는 답.

여튼 처음에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안나가 부르고 돌아다닐때 엘사가 대관식 준비하는 장면들은 진짜 아릿하게 좋았음. 여튼 그부분이 왜 그렇냐 하면….. “나는 평생 갇혀 살았는데 이제 더 꽁꽁 숨기지 않으면 안돼”라는 그런게 심할정도로 느껴져서. 숨막히게 안쓰러웠다.

안나 파트는, 중반까지는 공주가 왕자님 노릇을 다 한다. 따지고 보면 엘사를 구원하는 것도 결국은 다른 왕자님이 아니라 안나고. 정작 이웃나라 한스 왕자가 개새끼임이 밝혀지고. 다만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파트에서는 다시 공주로 환원되긴 하는데, 그정도야 뭐. 이게 무슨 소녀혁명 우테나도 아니고 디즈니니까요. 크리스토프는 오오토리 아키오같은 개객기도 아니고. 그래도 크리스토프의 솔로곡이 정말 없다. 헛간에서 부르던 노래 하나 뿐인데, 그것도 나중에 넣었다는 말이 있으니. 그래도 주인공은 안나다. 마지막에, 애인이나 남편 포함 이성친구와 키스하는 쪽이 디즈니의 히로인이니까요.

ps) 그런데 엘사는 여왕님 안 해도 건축해서 먹고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음. 발로 쾅 밟기만 했는데도 별다른 재료 없이 성 하나 뚝딱 짓는데 이게 오차도 없고. 얘가 왜 이렇게 건축을 잘 할까 생각해봤는데, 설마 갇혀지낸동안 국토개발과 토건사업으로 경기를 부활시킬 계획을 세우고 건축학을 공부했다거나. 한여름에 스케이트장 만드는 창조경제….. (잘못했습니다)

ps2) 엘사의 그 반짝반짝 얼음드레스는 마법으로 변신한 의상. 나중에 봄이 돌아올때, 저 엘사 드레스 녹지 않을까(….) 걱정한 변태는 나 뿐인가.

댓글

“겨울왕국(Frozen)” 에 하나의 답글

  1. 지원 아바타

    성소수자로 바꿔도 얘기가 잘 되네요. 신기해라…
    엘사와 안나의 부모님은, 뭐 글쎄 사람은 좋았던 것 같지만
    아이의 재능을 대하는 부분에선 나쁜 부모였죠. (양육방법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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