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와 악의 평범성, 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 이 애니메이션은.
개봉 전부터 논란이 많았던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때 가미카제 전술에 썼던 제로센 전투기를 제작한 호리코시 지로가 주인공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여졌다. 호리코시 지로가 주인공인데 파란 하늘에 로맨틱한 분위기의 포스터가 깔리니, 누가 봐도 이건 전범을 옹호하는 작품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봤을 때의 감상은 좀 달랐다. 이 작품 속의 (실존인물과 다른) 호리코시 지로는 로맨틱한 청년이 아닌, 비행기 오타쿠다. 그는 하급생을 괴롭히는 친구를 유도로 집어던지거나 바람에 날아가는 아가씨의 모자를 잡아주거나 관동대지진 때 부상을 입은 아가씨의 하녀를 업고 대피장소인 신사까지 데려다 주는 친절한 사람이지만, 그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학습된 행동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는 프랑스어로 시를 읽고, 세계 문학작품을 두루 알며, 독일어로 능숙하게 말할 수 있는 등, 교양을 겸비한 지성인이며 엔지니어다. 하지만 그는 오타쿠다. 그는 항공잡지를 읽기 위해 형의 영어사전을 뒤적이고,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비행기를 생각한다. 그가 외국어에 능숙한 것은 교육의 힘도 크겠지만 항공 덕후로서 영국과 독일의 항공 관련 서적을 읽기 위함이 크다. 그는 비행기를 너무너무 좋아하다 못해 항공잡지에서 본 비행기 설계사 카프로니 백작과 꿈에서 만나기도 한다.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사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
카프로니 백작의 이 말은 역사적인 사실은 다 떼고 생각하면 무척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애니메이션은 이념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아름다운 꿈이고 감독은 그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어린 오타쿠에게 말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을 상상해 보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었고, 호리코시 지로의 더빙을 맡은 사람은 다름아닌 오타쿠 대마왕 안노 히데아키다.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후 지로가 해군이 발주한 비행기의 성능을 상회하는, 두랄루민을 채택한 신형 비행기에 대해 동료들에게 설명하는 시퀀스는 그 자체로 “자기 장르 영업하는 오타쿠” 그 자체다.
지로는 당시 전투기를 만들던 군수업체였던 미쓰비시에 입사하고 비행기를 설계한다. 일본인은 뭐든 베끼기 때문에 공장을 보여줄 수 없다며 독일인들에게 차별을 받기도 하고, 그의 상사가 설계한 비행기는 육군 앞에서 날개 연결부가 파손되어 추락하는 등 우여곡절이 가득하다. 지로가 해군을 위해 설계한 시제품 함상 전투기도 날개가 떨어져 박살난다.
그리고 이 무렵 지로의 꿈에 나타난 카프로니는 말한다.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를 선택한 이상 비행기는 저주받은 꿈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실제의 지로와 카프로니는 만난 적이 없으므로, 지로의 꿈 속 카프로니는 지로의 양심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로에게 도착한 두랄루민 샘플은 “상하이 사변”의 기사가 실린 신문지로 감싸여 있었지만, 지로의 눈에는 두랄루민 샘플만 보일 뿐, 일본의 죄는 보이지 않는다. 구사카루 호텔에서 만난 카스트로프 씨는 중국과의 전쟁, 만주국 창설, 국제연맹 탈퇴, 세계를 적으로 만든 것을 잊어버리니, 일본도 독일도 파멸하고 말 거라고 말하며, 독일의 비행기 설계자인 융커스 박사가 히틀러 정부에 반발하다가 쫓기는 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지만, 지로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현실에서 지로의 동료인 혼조는 말한다. “우리는 무기 장사꾼이 아니라 좋은 비행기를 만들고 싶은 것 뿐”이라고. 지로는 자신의 현실을, 동료인 혼조의 입을 빌어 변명한다. 우리는 그저 좋은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뿐이라고. 잘 해보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나쁘게 되었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지로는 좋은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저주받은 꿈인 전쟁에 가담했고, 같은 이유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가슴아픈 순애보를 아름답게 그려냈다고 말하기도 하고, 바로 그 이유로 전범을 미화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 속 지로는 결코 나호코와 그런 절절한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처음에 지로가 바람에 날아가는 나호코의 모자를 잡아 주고, 관동대지진 때 도움을 주었고, 한번쯤 바래다 준 집 위치까지 가 보긴 했지만, 이후 지로가 딱히 나호코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로가 휴가를 간 구사카루 호텔에서 마주친다. 나호코가 병 때문에 약속을 취소해도, 지로는 딱히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다가 아직 몸이 덜 회복되어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나호코와 마치 어린아이들 장난처럼 주고받아 던지며 놀다가, 좋아한다고 말하자마자 청혼해버린 것에 불과하다.
지로는 나호코가 각혈했다는 전보를 받고 도쿄로 가는 열차 안에서도 익면하중을 계산한다. 나호코는 위중하지만, 나호코의 부친은 바로 돌아가려는 지로에게 남자에게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로를 이해하는 듯 보이는 대사이지만,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이다.) 나호코는 지로와 함께 살기 위해 후지미 고원 요양병원에서 눈이 내리는 날에도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야외의 맑은 공기를 마시는 치료를 계속하지만, 지로는 한번 찾아오지도 않고 짧은 편지만을 보낼 뿐이다. 나호코는 병원에서 도망쳐 지로를 찾아가고 두 사람은 지로의 상사인 쿠로카와 부부를 증인삼아 부부가 되지만, 지로는 밤에 나호코의 곁에서 불을 켜고 설계도를 보고, 나호코의 손을 꼭 잡은 채 줄담배를 피워 가며 일한다. 나호코는 지로를 안심시키려고 매일 화장을 한다. 누가 보아도 병색이 깊어진 나호코를 보고 지로의 여동생이자 의사인 카요는 별채에 눕혀둘 게 아니라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로는 자신들은 지금 하루하루를 소중히 하고 있는 거라고 말한다. 정작 자신은 나호코를 돌보지 않고, 비행기 설계에만 몰두한 채로. 순애보가 아니라 지극히 이기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비행기와 나호코 중 하나를 고르라면 이 작품 속의 지로는 비행기를 골랐을 것 같다)
마침내 지로가 접어 날리던 종이비행기 같은 날개로 240노트의 속력을 내고 곡예비행도 해내는 제로센이 완성된다. 하지만 지로가 테스트 때문에 당분간 격납고에서 먹고자고 해야 한다며 집을 떠난 사이, 위중해진 나호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병원으로 떠나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도 다시 지로의 꿈 속에서, 지로는 불타는 마을과 사람들, 전쟁의 도구가 된 제로센의 무덤들을 본다. 그 꿈 속에서 수많은 제로센들이 하늘로 날아가지만 단 한 대도 돌아오지 못한다. 그의 소망은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융커스 박사처럼 히틀러에 반기를 들지도, 9엽 비행정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비행기를 만들려 한 카프로니 백작처럼 자신의 꿈을 있는 현실에 구현하지도 못한 채, 군대에서 요구하는 비행기들을 고분고분히 만들었을 뿐이다. 테스트 비행 때 부서진 비행기를 보며 자신의 설계가 낳을 수 있는 결과를 예상했으면서도, 그는 “꿈”이라는 이유로 강행하고, 결국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지로의 꿈 속에서 나호코는, “당신은 살아가라”는 말을 남기고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지로는 “고마워요, 고마워요.”라고 대답하지만, 나호코는 지로를 구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죄를 직시하고,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라는 명령이다.
이 이야기는 시대에 휘말린 평범한 엔지니어의 비극과는 다르다. 그는 초반에 비행기 날개 연결부의 파손을 예측했던 것 처럼 자신이 만든 것의 결과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났다. 그는 고전을 논하는 지식인이었지만, 카스트로프가 일본을 비판하는 순간에는 못 알아듣는 듯 행동했다. 그는 독일(융커스)과 이탈리아(카프로니)의 비행기 설계자들 역시 비행기라는 저주받은 꿈을 안고 적어도 고민이라는 것을 했음을 알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군대와 회사의 지시에 따르는 길을 선택했다. 그 이야기를,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타쿠 중의 오타쿠인 안노 히데아키의 목소리를 입혀, 치열한 고민 없이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좇던 오타쿠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죄를 짓고, 자신을 이해하던 유일한 사람마저 잃어버리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실제의 호리코시 지로와도, 그리고 호리 다쓰오의 소설 “바람이 분다”와도 다른 이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