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묘사(1페이지)

고막 바로 옆에서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엄마가 시장에서 사 주신 풍선을 들고 골목길을 달리다가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던, 그 때 같았다. 저릿한 아픔, 밀려드는 서러움, 누구든 내게 손 내밀어주었으면 하는 그런 절박한 마음. 넘어지면서, 놓치지 않으려다 내 팔에 눌려 터져버린 풍선 조각은 씹다가 버린 풍선껌처럼 바랜 보라색이었다. 눈 앞에서, 그 풍선 조각이 다시 한번 터져나온 것 같았다.

손끝에 걸린 그 보랏빛. 아니, 내 보랏빛 블라우스에 물들어가는 비현실적으로 붉고 끈적한 핏빛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울고 싶었다. 내 탓이 아냐.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엄마가 사 주신 풍선이 터져버리고, 주저앉아 엉엉 울던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뛰어다니지 말라고 했잖니. 주변을 꼭 보고 다니라고 했잖니. 그러게요, 엄마. 그래도 이건 내 탓이 아니잖아요. 엄마는 엉엉 우는 나를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도 한참 어렸으니까. 남부끄러우니까 그만 일어나라고, 계속 여기서 울고 있으면 버리고 갈 거라고, 어린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억지로 일으켜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일어나야지. 엄마가 화를 내시잖아. 기억과 현실이 엉망으로 조각나 뒤섞이는 것 같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숨이 막혔다. 숨을 쉴 때 마다 무언가가 찢어져버리는 듯 아팠다. 내 어깨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경련하고 있었다. 길 건너편,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불이었다. 빨간 불로 바뀌려면 아직 2, 3초는 남아 있었다. 뭐야. 울고 싶었다. 정말로 내 잘못이 아니잖아. 따지고 싶었다. 대체 무엇을? 누구에게?

애초에 야식을 먹자고 사다리를 탄 것이 잘못이었다. 이 밤중에, 야식이 필요하다면 뭐든 배달을 시켜도 되는 것을 굳이 길 건너 편의점에서 파는 무슨 딸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굳이 사다리를 타서 한 사람 내보내자고 한 팀장 잘못일 거다. 알기는 알까. 새벽 세 시까지 하는 야식집이 지천에 널렸는데도 굳이 이 새벽에 사람을 내보내야 할 만큼, 그놈의 식탐, 그놈의 군것질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을까. 개새끼. 울음처럼 욕설이 나왔다. 아니, 욕설을 한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재수 옴 붙었네. 제에미. 술에 취한 듯한 남자가 내 어깨를 억지로 잡아 뒤집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이 쌀자루를 들어 돌려놓듯 넘어갔다. 내가 일하는, 바로 그 건물의 수많은 창문들이 이 시각에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건물을,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위치를 자꾸만 흐릿해져가는 눈으로 세었다. 정신을 차려야 해. 바싹 말라붙어 말이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어. 잠들면 안돼. 병원에 갈 때 까지 정신차리자. 생각하는데, 남자가 내게 침을 뱉었다. 뭐야. 이 세상의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퍼부어주고 싶었다. 뭐야. 무슨 짓이야. 지금 이 피가 안 보여? 사람을 치었으면, 119에 신고라도 해 줘야 하잖아. 그때, 돌아보지도 못하는 내 몸 오른편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갈아버릴 것 같은 엔진 소리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안돼, 그만. 그만해. 잘못했어요. 하느님 잘못했어요. 짓지도 않은 죄들을 떠올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해를 쏟아내듯, 맛보지 않아도 짜디짠 것이 느껴질 만큼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따갑고 쓰라린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설프게 교통사고로 드러누운 것, 보상해준다고 합의하다가 기둥 뿌리 뽑혀나간다고. 차라리 아예 밀어버리는 게 돈은 덜 들어간다고. 트럭을 몰던 아버지가 동네 아저씨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낄낄거리던 이야기의 한 조각이 내 턱을 부수며 목울대 위를 지나가는 타이어 자국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다가, 비수처럼 내 목에 내리꽂혔다. 이번에는 내 머릿속에서, 정말로 커다란 풍선이 빵,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쁜 새끼. 저 나쁜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어. 그 간절한 소원이 닿은 듯, 마지막으로 내 눈에, 저 구석에 매어달린 CCTV가 비쳤다. 아아. 더는 깜빡일 수 없게 된 눈에, 선홍색과 희미한 분홍색이 뒤덮였다.

마치, 팀장이 사오라고 한 아이스크림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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