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 곽재식, 온우주

제목을 보자마자 어디 천안삼거리에서 온 눈사람 생각부터 했다. 전에 거울에서 읽었던 그, 결혼식을 앞두고 지구 반바퀴를 달려온 남자의 모험담 제목이 그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다음이었다. 우주복을 입은 남자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뻘쭘하면서도 SF스러운(!!) 배경 아래 선명하게 찍힌, 이미 “아빠의 우주여행”과 “독재자”에서 단편을 읽은 적 있는 곽재식 작가님의 단편집 제목이 그랬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하나 빼고 다 로맨틱하다. 아마 나의 담당님께 이 책을 보여드리면 대체 여기의 어디가 로맨틱이냐고 나를 거꾸로 매달고 탈탈 털고 싶어하시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갑자기 나타난 딸의 친엄마를 만나게 해 주려 달려가고, 여자친구와 재회할 그 장소를 지키기 위해 왕을 찾아 달려가고, 결혼식에 맞추어 도착하기 위해 지구 반바퀴, 아니 아마 한 지구의 0.7바퀴 정도를 미친듯이 달려가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보이기 위해 미친듯이 자전거를 연습해서 또 달려가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는 로맨스. 좋지 아니한가.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한 이야기는 바로 그 자전거가 나오는 “최악의 레이싱”이었다. 자전거라는 건 뒤에서 붙잡으며 따라가다가 타고 있는 사람이 모르는 순간에 손을 놓았을 때, 즉, 누군가 잡고 있다고 믿고 있는 상태로, 넘어지지 않는다고 믿는 그 상태 그대로 밟고 달려가 균형을 잡으면서 배우는 것. 이걸, 대전 카대의 넓고 넓은 부지와 무게중심과 평형장치와 서버와 클라이언트와 – 그 서버 이름이 “휴스턴”인 것도 또 좋지 아니한가 – 각종 중계장치로, 좋아하는 여자를 자전거 뒤에 앉히고 학교를 가로지르고 싶은 한 청년의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이야기, 라는건 얼마나 좋은가. 몇번을 다시 읽어도 두근거리고 좋은데.

이렇게 일상과 로맨스와 SF가 절묘히 만난 이야기들 사이에, “달팽이와 다슬기”가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어머니가 들려준 베트남의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매도하는 선생님이라든가. 실제로도 얼마든지 그렇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울해졌다. 마지막의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에서도 그렇다. 이민 2세대인 약혼녀에 대해 주인공의 어머니는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주인공은 “그녀의 부모님이 한국에 와서 결혼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 그녀를 낳았으니 한국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들이 수군거리는 결혼이라든가, 그런, 지극히 현실적인 장치들은, 이 남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결혼식에 제 시각에 도착해야 하는데 더 힘을 실어준다. 우울하게도. 그, 근미래의 현실감이 선명한 이야기들이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이 문자 그대로 결혼 블록버스터급 액션 모험담. 결혼하러 달려가는거 찍는데 전세계 한바퀴 로케. 급일 이야기가 영상화가 되면 얼마나 멋질까 싶다가도, 아마 한국에서 이걸 영상화한다면 약혼녀는 이민 2세대가 아니라 그냥 징징거리는 브라이드질라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시 절레절레절레 – 고개를 저었다.

한권을 끝까지 다 읽는 동안, 이 책이 틀림없이 내 “대단히 자주 봐서 너덜너덜하게 될” 책 목록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 이런 로맨스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은, 며칠 전 신촌에 거울 쪽 행사가 있었을 때, 마침 그 앞에서 전진석 선생님 강의를 듣고 들어가다가 잠깐 들렀는데, 그 날 온우주 사장님께 이 책을 받았다. 책이 정말 예쁘게 잘 나왔다. 시리즈로 나온 거라고 들었는데, 마침 곽재식 작가님 단편집이 두 권이라 둘을 나란히 놓고 보았다. 다른 제목, 다른 분위기, 하지만 분명한 통일감. 공들여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달 쟁쟁한 분들의 단편집들이 시리즈로 나올 거고, 올 가을 쯤에 내 책도 여기서 나온다. 아, 어떡하지. 이렇게 괜찮은 걸 보고 나니 대체 어떻게 글을 다듬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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