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출판사 나쁜 출판사 이상한 출판사

일단은, 저는 중학교 때 썼던 추리소설에서 시작하여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꾸준히 창작글을 쓰다가(팬픽은 그 전에도 썼습니다) 1998년 대학에 진학하고 제 아이디가 생기면서부터 나우누리의 여러 게시판에서 바이트를 낭비하며 글을 올렸고, 2002년, 나우누리에서 쓰던 장편습작을 하나 들고와 조아라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2007년 2월에 데뷔하고 그해 7월 말 8월 초에 첫 책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요즘으로 치면 참 데뷔 오래 걸렸다고 해야겠네요. 여기서 데뷔란 공모전을 뚫었다는 뜻이고, 첫 책이 나온 기준으로는 2007년 7월 말입니다.

그럼 그 전에는 그냥 그대로 묻혀 지냈느냐. 그건 아니죠. 2000년~2004년 사이에 판타지 소설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면서, 조아라에 연재하고 첫 1년동안 출간제의만 몇번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게 제의했던 출판사들은 불행히도…… 검색해보니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네요. 음. 그렇지 않아도 레이디 디텍티브 하기 전에는 글만 써 주면 그 회사가 망하더라고 누가 헛소리를 하고 다녔는데(……) 그때 출간제의를 받았으면 저의 악명이 더 높아졌을지도. (먼산)

그때 출간제의를 받고도 안 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하나는 상식 이상으로 글을 고치라고 하는 것. 아니, 그정도로 고칠거면 딴 작가를 찾으라고요. 다른 글을 새로 쓰라고 하거나. 하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었죠. 예를 들면, 그때 쓰던 것은 아주 센 여자가 주인공이었는데, 그걸 주인공들 성별을 다 뒤집어달라거나.

그게 아니면, 쓰던 글은 그냥 온라인에 연재하고 아예 다른 걸 써달라고 하긴 하는데….. 그게 그 당시 유행하던 사극의 주인공들을 이세계에 진입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태조 왕건 이계진입물이나 대조영 이계진입물이나. 아니만 지금의 고등학생이 태조 왕건 시대에 가서 장군이 된다거나 뭐 그런 것들. 저는 이고깽도 싫어하고, 당장 TV에 나오는 사극 주인공의 시류에 묻어가는 것도 참 싫어하기 때문에 패스.

마지막으로는, 말도 안 되는 출간조건을 내놓은 것이었어요. 첫 작품은 신인의 홍보를 위해 출판사에서도 돈을 많이 쓰니까, 라는 이유로 인세 조건이 희한하거나 아예 매절이거나. 미쳤습니까, 약을 빨지 않은 이상 그런 계약은 안 하죠. 그래서 패스. 그 1년이 지나고 나니, 그 다음에는 “아예 새로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왔어도 쓰던 글로 데뷔하는 건 안 먹히더라고요. 글이 길어서 안되겠다고. 출판사에서는 3권 이상, 그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시기에 끊어버릴 수 있는 걸 원하는데, 곤란할 만 하긴 했지요. 여튼, 역시 자기들이 원하는 걸 써달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때도 아직 이고깽에 9클래스 마법사들이 날뛰던 시대인데 다 제 취향도 아니라서 패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슬슬 주인공만 달라지고 패턴은 비슷한 판타지 소설(소위 양판소….라고 하죠.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게 또 문제기도 했어요. 오만방자한 소리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짝퉁이 되기 싫었거든요. 작가가 한번 짝퉁이 되면 그 다음에 진짜 자기 것을 써도 그 사람은 짝퉁 쓰던 사람으로 찍힐테니까요.

여튼 그 무렵에, 회사 그만두고/망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해서 합격한 뒤로 반년쯤 시간이 비어서 여기저기 출판사에 문 두드리고 돌아다녀보던 차에(36곳쯤 됩니다. 대한민국에 판타지 출판사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어요. 여튼 그중 한 80% 이상이 똑같은 말을 했는데, 이고깽 쓰면 데뷔시켜 준다고 하더라고요. 음), 그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준비가 되면 길은 열린다. 준비가 되기 전에 길이 열리면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고. 그 말씀도 맞는 것 같았어요. 뭐, 습작으로 완결을 몇 편은 내 봐야 준비가 될 것 같아서 글은 계속 썼습니다. 그 말씀이 맞는 말씀인 것을 데뷔하고서 알았고, 또 얼마 전 전진석 선생님 강의 들으면서 또 들었죠. 준비가 되지 않은 작가가 데뷔하는 것은, 남들에게는 그냥 소모품 하나가 또 한 번 쓰이고 1회용으로 사라진 것이고, 그 본인에게는 재앙이에요. 어설프게 갖춰지지 않은 채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다가 덜컥 데뷔하고 나면, 그 뒤는 정글이라서 방어고 뭐고 없습니다. 못 버티면 그냥 한번 쓰이고 사라지는 것. 그 뿐인거죠.

여튼 그러다 보니 + 저도 그동안 당한 일들도 보고들은 일들도 있다 보니.

 

 

1. 매절계약 하지 마세요.

이건 요즘은 다들 아시겠지만, 매절은 저작물 이용대가를 판매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괄로 지급하는 건데, 이런 매절계약서에는 종종 “저작권 양도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계약서를 내미는 출판사가 있다면 눈 앞에서 계약서 두 조각 내고, 그 출판사 이름은 SNS에 퍼뜨려 널리 인간을 이롭게 좀 해 주세요. 요즘은 아마 그런 회사 별로 없을 겁니다만.

물론 매절이라고 다 작가가 불리한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번역서는 보통은 매절계약을 하고요. 그런데 번역서도 아닌데 매절로 해도 저작권 양도가 없고 작가에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는, 작가가 아서 클라크 급일 경우 한정입니다. 아서 클라크라면 출판사에서 돈싸들고 가서 거액을 안겨놓고 원고 나오길 기다리겠죠. 님은 아서 클라크가 아니에요. 당신 글이 팔릴 글이라면 매절계약 안 해도 언젠가는 당신은 데뷔할 수 있습니다.

2. 2차 계약에 대해서는 좀 잘 살펴보세요

2차 이용 계약이란, 이걸 이북으로 만들거나 스마트폰에서 서비스를 하거나…… 드라마나 애니화나 게임화나 영화화를 하는 것까지 다 포함된 겁니다. 이건 회사마다 다루는 방식이 좀 다르긴 한데, 가급적이면 이런 계약서를 받아보고 바로 사인하지 말고, 주변에 법좀 아는 사람, 지나가는 법대 1학년생이라도 붙잡고 물어보세요. 괜찮은 회사라면 2차 이용에 대해서 해당 회사에 “우선권”을 준다고 합니다. 독점이 아닙니다. 여튼 법이나 계약이란 우리의 일상언어와는 100%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니, 알만한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꼭!

참고로, 대개 이북 계약을 직접 하면 작가가 받는 비율이 높은 반면, 종이책 출판사를 끼고 2차로 이북을 만들면 이북으로 들어오는 수익을 다시 작가와 출판사가 나누게 됩니다. 그렇기는 해도, 대개는 이북 출판사보다 종이책 출판사가 인프라가 더 발달되어 있어서 드라마화 같은 계약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으니 로맨스를 쓰셨는데 내 소설은 드라마가 되고도 남는다 싶으시면 좀 잘 생각해 보세요.

3. 계약 해지 조항에 대해 잘 살펴보세요.

계약 해지가 작가의 과실이라면 계약금의 2~3배를 돌려주게 되어 있지만, 애초에 계약금이라는 것이 전체 계약한 인세의 10% 정도입니다. 이걸 “전체 계약한 인세의 2~3배”라고 헛소리하는 개새끼들 있습니다. 가서 엄마 젖좀 더 먹고 오라고 하세요. 제 말은, 혹시라도 전체 계약한 인세의 2~3배라고 적힌 계약서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셔도 된다는 말입니다. 계약 해지가 회사의 과실이라면 그에 따라서도 회사가 지불할 부분이 있습니다. 회사의 과실이 명백할 경우, 계약을 해지하면 불이익이 있다고 떠들어대는 회사가 있다면 회사가 개새끼입니다. 보통 회사의 과실로 계약을 해지할 정도까지 갔다면, 그 회사는 업계에서도 성한 회사가 아니에요.

“당신이 지금 나란 계약 해지하고 무사할것 같아? 이 업계에 다시는 발 못 붙이게 해 주마!”

저거 뻥입니다. 기죽지 마세요. 명백한 회사 과실로 계약 해지당할 정도의 회사가 뭔 능력으로 당신을 이 업계에 발 못 붙이게 합니까? 3류 드라마만 잔뜩 본 티가 풀풀 나는 애송이같은 발언이니 그냥 잊으세요. 그리고 그런 놈과 더 일해봤자 손해만 지대했을테니 지금이라도 해지하고 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세요.

4. 개인지 출간 대행과 계약맺고 출간하는 것은 다릅니다.

출판하여 복제 배포하는 데 필요한 독점적인 출판권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저작권 사용료를 지급하고, 어떤 식으로 출간하고 저작권을 보증하며 2차 저작물 사용의 우선권을 어떻게 둘 것인지에 대해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세요. 개인지는 동네 인쇄소에서 찍을 수 있고 님의 홈페이지에서도 그냥 팔 수 있어요. 그러나 제대로 계약을 맺은 책이라면, ISBN이 찍히고, 총판을 통해서 전국의 서점으로 배본되며, 온라인 서점과도 판로가 뚫려 있어야 하죠. 요즘, 누가 알라딘이나 응24에도 안 올라온 책을 무슨 정성으로 그렇게 찾아서 사 본답니까. 그리고 알라딘이나 응24에도 안 올라올 정도의 책이라면, 동네 서점까지 방방곡곡 배본이 될 리도 없고요. 신생출판사라면, 배본의 범위를 명확하게 해 두세요. 전국의 총판에 두루두루 뿌려지는지, 온라인 서점과의 계약관계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이 문제에 대해 담당자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님의 책은 그냥 이제 은퇴하는 관공서 과장님 같은 분들이 적당히 아래아 한글로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쳐서 출판사에 돈좀 주고서 “아무개 회고록”하고 찍어낸 책과 동급이 될 수 있습니다. 계약하기 전, 배본의 범위를 명확하게 해 두세요.

참고로 제가 계약할뻔 했던 어느 질나쁜 신생출판사는, 그 점에 대해 따져 물었더니 그제서야 총판 알아보러 가더라고요. 하느님, 맙소사. 제가 거기랑 계약하지 않고도 거길 떼어내는데 반년 걸렸습니다. 질나쁜 출판사는, 여튼 얽히면 고생입니다.

5. 계약서에 도장찍기 전에 움직이는 출판사는 사기꾼입니다.

물론, 님이 계약서에 도장찍기 전에 원고를 이미 완성할 수는 있습니다. 왜? 신인작가는 원고를 완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으니까요. 저만해도 그런걸요. 거의 한권분량 원고 세이브하기 전에 계약서에 도장찍어 본 것은 최근에 계약한 웨딩책과 올 가을에 나올 단편집밖에 없네요. 자, 여튼, 계약서에 도장찍기 전에도 담당과 의견을 교환하며 원고를 만들어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당신이 도장도 찍지 않았는데 예약을 받거나 선행출판, 예약특전, 그런 것을 잔뜩 내세워서 광고를 인터넷으로 뿌려대거나.

그거 사기꾼입니다. 님이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는 그 사람들은 님의 글을 찍을 권리도 팔 권리도 없습니다. 님이 도장 안 찍어주면, 그동안 예약 받은 것은 어떻게 할 건데요.

제가, 천만 다행으로 나쁜 출판사의 마수에 거의 다 걸렸다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 얘가 제가 계약서에 도장도 찍기 전에, 그리고 저와 먼저 일했던 출판사와 양해도 구하기 전에, 예약부터 받고 독자님들에게 선입금을 받아댔기 때문이에요. 사실 그쯤 되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계약서에 도장 찍게 됩니다.

찍으시면 안됩니다. 쪽팔리는건 잠깐이고, 그런 출판사에게 걸려서 신세 망치는건 몇년 갑니다.

6. 신생출판사라면 사람을 보세요.

사장이 출판사에서 여러 해 일해 온 분이라면 대개 나쁘지 않습니다. 출판사의 좋은 관행과 나쁜 관행을 두루두루 알고 있고, 인맥도 있으며, 나름대로 만들고 싶은 책이나 이상이 있어서 독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우도 나쁘지 않아요. 부족한 건 자본 뿐이죠.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영업 출신이라 책은 잘 모를 것 같다고요? 영업 출신만의 장점도 있습니다. 팔리는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을 수 있고, 발이 넓어서 좋은 편집자와 좋은 디자이너 등등과 줄줄이 연결될 수 있죠. 이런 사장 밑에 좋은 편집자가 들어간다면, 2, 3인 회사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특히 신생 출판사가 전국의 총판에 책을 깔아놓는 데 있어서, 이 영업자 출신의 사장들은 결정적인 대활약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요.

사장의 출판경력이 짧더라도, 이분이 주력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고 좋은 편집자와 영업자가 있다면 괜찮습니다. 실제로 그런 회사들 중에 잘 돌아가는 데들도 적지 않아요. 단, 1인회사인데 사장의 출판경력이 고작 동인지 몇 권 낸 수준이라면 절대 같이 일하면 안됩니다. 전문 웹진 같은 것을 꾸준히 내 올 정도의 기획력이 있다면 모를까, 동인지 한두권 낸 애들이 사장이라고 앉아 있다면 근처에 가지 마세요, 절대로. 특히, 사장이 20대라면 당장 100미터 밖으로 피하세요. 미안하지만 20대 사장이, 님의 책을 멋지게 만들어서 전국에 깔아줄 능력을 갖추긴 쉽지 않습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가 더 쉽겠네. 사장이 30대라도, 괜찮은 출판사에서 적어도 7, 8년 이상 일했고 당신이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책을 만들어 낸 편집자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출판사 등록을 하는 것은 정말 쉽습니다. 책상 하나 전화 한대, 그리고 10만원도 안 되는 인지값만 있으면 출판사를 차릴 수 있어요. 그렇다 보니 이 바닥에는 사기꾼과 개새끼가 아주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믿을만한 편집자가 있는 회사라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겠죠.

7. 원고 뺑뺑이에 대해서는 좀 잘 생각해 보세요.

출간할 레벨이 되지 않는다고 계속 빠꾸를 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회사가 책을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든가, 여튼 회사 상황으로 찍기 어려운 것을 작가에게 돌리는 방법입니다. 신생회사에 첫 타자로 들어갔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도 다들 줄줄이 빠꾸를 당하는지 확인해 보세요. 리테이크도 한두번이지, 만약에 열명의 작가가 있는데 열명이 다 수십번의 리테이크를 겪고 있다면, 이 상황은 둘중 하나입니다. 그 열명의 작가를 섭외한 편집자가 눈이 옹이구멍급이라 안목이라고는 없어서 어떻게 그 인원들을 잘못 잡아온 것이든가, 편집자에게 뭔가 문제가 있거나,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물론, 열명의 작가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순조롭게 책을 내고 있는데 당신 포함해서 두세명만 계속 뺑뺑이 리테이크를 당하고 있다면 그건 그 두세명이, 원고가 잘못되었건 뭐가 잘못되었건 책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닌거죠. 이건 출판사가 잘못한게 아닙니다. 그러니 계속 뺑뺑이를 당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 상황은 어떤지 좀 봐 보세요.

 

 

 

인간공학적으로 사람이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게 대개 일곱 가지 정도라서(예, 제 복수전공이 기계공학부 산업공학전공……) 일단 이정도로 마무리. 그래서 순조롭게 데뷔를 했다고 쳐도, 아마 다음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할 겁니다.

 

1. 두 번째 글이 안 쓰여져요 / 두 번째 글을 내 줄 출판사가 없어요 / 지금 출판사에서 다음 원고 가져와보라는 말을 안 해요

님의 글이 문제입니다. 다시 쓰세요

2. 담당이 맨날 괴롭혀요. 무슨 새디스트인가봐요. 차기작 계속 써오라면서 계속 리테이크 시켜요.

님은 싹수가 있는 겁니다. 담당님 말 들으세요. 출판사는 자선사업하는 데 아닙니다. 싹수가 없는 사람을 왜 괴롭혀요. 작가지망생은 쌔고 널렸고 발에 채입니다. 님이 싹수 없으면 님 버리고 다른, 님하고 비슷한 레벨인 사람 주워다 쓰면 그만이에요. 안그래요?

물론, 저보고, 요즘 드라마에서 이런게 유행하고 영화로 뭐가 유행하니까 이런걸 써봐라, 라고 한다면 저는 안 씁니다. 드라마 소재로까지 나올 정도면 그건 유행 끝난 거라서요. 대체 왜 제가 취향에도 맞지 않는 걸 쓰면서 뒷북을 치고 거기에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하는 아류작이나 쓴다는 소리까지 듣겠어요. 님의 소질과 상관없이 그런것 쓰라는 편집자는(예를 들어서 아까 말한, 대조영 이계진입물 그런거 쓰라는 편집자요), 님이 꼭 차기작을 내고 싶다면 뭐 할 수 없지만 님에게서 남의 아류작밖에 이끌어내지 못하는 편집자라면 사실 님에게 맞지 않는 사람인 겁니다. 진짜로요.

물론 이런건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나 일본에서 이런 장르가 유행하고 있다. 이게 네 소질에 맞을 것 같다. 아니라고? 네가 좋아하는 장르와 네가 써서 잘 쓰는 장르는 다르다. 이거 좀 써 봐라. 그렇게 뒷북 안 칠 만한 것을, 그 장르가 맞는 작가에게 가져와서 해 보라고 하는 편집자라면 당신에게서 뭔가 가능성을 본 겁니다. 실제로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와 자기가 쓸 수 있는 장르가 서로 다른 사람 많거든요. 예를 들어서 제가 요시나가 후미 님 같은 건조하지만 성숙한 감성이 담긴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걸 쓰진 못하잖아요? 저는 머리를 쓰는 이야기는 잘 씁니다. 캐릭터라면 멋진 미중년이 나오는게 좋고, 연애를 쓴다면 앵스트하고 파워게임에 가까운 연애라면 쓸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지금 잘 나가는 장르와 어떻게 상생시켜서 좋은 걸 쓰게 이끌어주는 편집자라면 절해도 됩니다. 당장은 님을 꾸덕꾸덕 밟아도 그 사람은 당신의 가능성을 여튼 찾아봐주고 있는 사람이에요. 따라가세요.

 

 

여튼 그러니까 결론은, 출간제안 쪽지 온다고 낼름 혹하지 마시라는 것. 상담은 충분히, 계약은 신중히. 세상은 넓고 출판사는 많으며, 때가 되면 공모전이든 뭐든 어떤 식으로든, 편집자의 귀에 당신 이름은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골방에서 원고지 쌓아놓고 쓰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 올리는 건데, 당신의 글이 팔릴만한 글이면 출판사에거 그걸 그냥 내버려 둘 것 같습니까? 절대 아니지. 그러니까, 조건 신중히 보고, 계약서를 내밀면 하루만 생각해본다고 하고 가져와서 법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신생출판사면 사장 뒷조사좀 해보세요. 구글에 그 사람 메일주소 블로그 주소 이름만 때려봐도 대충 과거가 나옵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상업지를 표절해서 낸 책을 만들었던 사람, 그런 것을 경력이라고 내세우며 “상업지 회사에서도 우릴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놈이 있다면, 도망치세요.

제가 그런 놈을 하나 알고, 그놈은 H사(저와도 일하고 있는 회사라서 체크하는데 어렵진 않았어요)에서 자기들을 인정했다고 하는데,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군대도 안 다녀온 어린애가 그러고 있어서 봐준”거였답니다. 표절같은것 하는 놈하고 일하면 님의 인생도 어느순간 망가지니까 잘 도망치세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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