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

이 영화가 한참 이슈였을 때, 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바빴다. 대체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고, 사실은 레이디 디텍티브 마지막화를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고 있어서 못 봤다. 다니는 직장이 관공서다 보니, 이런 영화를 보거나 하는 것을 은근 눈치 주는 사람들도 없지만은 않았다. 그런 관계로, 나는 영화를 보진 못하고 굿 다운로드 나오자마자 구입만 해 놓았다.

그럼에도 못 보고 시간만 보내던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바로 오늘, 조금 전의 일이었다. 집에 물이 안나와서; 오늘은 찜질방에라도 가서 자야겠다 하고 있었던 것을, 마침 부부의 날이라고 그냥 모텔로 직행한 덕분이다. 물론 모텔 앞에서 직장상사 3분과 마주치는 불상사가 좀 있긴 했지만. 여튼, 모텔에서 1박을 하면서 영화나 보자고 하다가 고른게 이 영화였는데, 부부의 날이라고 뭔가 로맨틱한 영화를 기대했던 세이님의 반응이란 참으로 설명하기도 미안한 것이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김종태(김근태 의원)는 어느날 가족들과 목욕탕에 다녀오던 길,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그대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다. 이곳에서 그는, 하지도 않은 일들과 있지도 않은 배후에 대해 자백할 것을 강요받으며 22일동안 고문을 받는다. 이 영화는, 잠도 재우지 않고 자술서를 쓰게 만들고, 물고문을 하고, 때리면서도 나중에는 그를, 이해하지는 못할지언정 대체 저놈은 무엇을 위해 저러고 있는가 기막혀하고 때로는 연민하는 경찰 몇 명, 승진을 위해 그에게서 없는 정보를 짜내려 하는 “전무”라 불리는 남자, 그리고 김종태를 칠성판에 묶고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번갈아 해 대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근안)의, 22일간의 고문기록을 보여준다. 끝내, 고문에 꺾이고 조직도를 달달 외우며, 있지도 않은 배후로 함세웅 신부를 지목하며 괴로워하는 김종태의 모습을 보는 내내, 세이님은 무섭다는 말을 했다. 아마도 틀림없이, 부부의 날에 함께 볼 영화로는 정말 마땅치 않기는 했겠지. 영화를 보고 나서, 김근태 의원에 대한 이야기와, 실제로 인재근 여사가 어떻게 이 일을 알게 되고 또 알리셨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22일이나 버티다니. 생각할수록.

김근태 평전을 읽으면서도, 대체 어떻게 그 시간들을 버티실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영상은 좀 더 자극적이고 강렬하여, 한 줄 한 줄의 판단에는 방해가 될지언정 확실하게 머리에 그 이미지를 심어놓기 충분했다. 시대가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와중에 “민주화”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정신나간, 네오나치급 어린애들이 매일매일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는지, 그런 이야기에 마음이 산란하다. 세이님은 고문장면 하나하나가 무서웠을지 몰라도, 그런 시대가 다시 올까, 나는 그런 걱정을 먼저 했다. 타국의 침략을 받았기에 민족주의가 앞서야 했던 시대로부터 바로 민주주의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대로 넘어왔으면 좋았을 것을. 또 한 번의 전쟁이, 그리고 너무 길어던 독재 시대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를 이상한 것으로 인식되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문득, 1985~87년에, 갓 유치원에 들어갔다가 국민학교에 입학했던 그때 그 시절에, 매일매일 대학생들의 데모가 뉴스에 나오던 시절에, 내 부모님을 비롯하여 아는 어른들이 다들 “데모하는 건 나쁜 것”이라고, 북한 편을 드는 거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우울해졌다. 그때 어렸던 내게 그런 말씀을 하시던 분들은, 아직도 거기서 크게 발전되지 않은 생각을 하고, 아직도 광주 민주화운동을 “그때 죽은 사람들이 다 북한 편드는 사람은 아니라도, 몇명이 선동을 하지 않았겠어?”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계시는 것이. 시대가 변했어도, 마치 외국으로 이민간 사람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 이민갔던 바로 그 시점에서 영영 멈춰 있는 것 처럼, 그분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 또한 유신시대, 잘해봐야 전두환 시대에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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