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준비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웨딩박람회에 다니면서 느끼는 감정은 총체적 난국이다. 웃기지도 않을 만한 물건에 웃기지 않을 가격이 척척 붙어 나오고, 엊그제 새로 지은 웨딩홀에 “황실의 품격”같은 헛소리가 붙어다닌다. 한마디로 싼티나고 조악한 모방에 가까운, 그 근본모를 키치함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전통은 만들어지는 것이라지만 업자가 상술로 만들어낸 것이 절반이 넘고, 불과 10년전에 결혼한 사람이 “그런 것은 들어본 일도 없다”고 증언하는 쓸모없는 군더더기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체,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보는 이놈의 몰개성 무취향은 어디서 온 것들인가 짜증을 내다가, 취향의 정치학을 손에 들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짜증을 내면서.
직접 보진 않았지만 “청담동 앨리스”라는 드라마의 명대사라는 것 중에 그런 게 있다더라. “안목이란 타고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이라고. 타고 나기를 좋은 환경에서 타고나서 좋은 물건들을 쓰며 체화가 된 디자인 감각은 배워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인데, 여주인공을 초반에 좌절시켰다는 이 “싸가지 없는 재벌2세녀의 대사” 스러운 말이 사실은 현실이라는 게 또 슬픈 일이지. 나이가 들 수록, 어려서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연스레 예술적인 취향을 체화한 사람과 나이가 들어서 음악이나 미술 등을 꾸준히 접하며 노력하는 사람 사이에는 마치 “어렸을 때 어학연수 좀 다녔던” 아이들과 그냥 수업시간에만 영어를 배웠던 아이들의 극복불가능한 발음의 갭 만큼이나 ㅋ 뛰어넘기 어려운 간극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긴 하니까. 취향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가 나고 자란 모든 배경의 산물이다. 한 형제라도 아롱이 다롱이인 것을 보면 타고난 성격이나 자기 노력이라는 게 따라붙긴 하겠고, 산업사회 돌입과 사회의 급변으로 부모나 집안의 취향보다는 아직은 자기 자신의 취향 비율이 더 높은 대한민국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렇고 아비투스란 “개인의 수준을 넘어 집합적 수준에서 형성된 사회적 구성물”이라면, 대체 이 종잡을 수 없는 결혼풍습은 어디서 와서 어디서 가는 걸까. 음. “학교 교육은 취향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대목과, 우리나라의 그 획일적인 학교 교육을 생각하면, 결국 몰취미 몰개성에 상류층 지향, 남만큼은 해야 한다는 감각이 뒤섞인 뭔가의 번데기 같은 건가.
필요 취향은 민중계급이 사회적인 규범에 매우 엄격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자신의 계급 출신들은 일체의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다. (중략) 이것이 민중계급의 현실주의적 태도이다. 이것은 지배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지배의 효과”가 민중계급의 취향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중략)
민중계급은 경제적 약자로서 무능력과 좌절감에 빠져있는데, 그들은 사치재를 선망하면서도 그것을 구입할 수 없는 좌절감을 대체재를 선호하는 것으로 극복한다. 예를 들어 샴페인 대신 발포성 와인, 진짜 가죽 대신 모조 가죽, 진품의 회화 작품 대신 조잡한 석판화를 자주 구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대중문화와 문화상품은 민중계급의 좌절감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출구이다. 즉 팬이 된다는 것은 문화적 박탈을 보상하는 수동적이고 허구적인 참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민중계급은 경제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 수준에서도 박탈당해,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소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가 소외된 상태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
라든가.
그동안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는 대중문화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저항이 높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증 연구가 보여주는 결과는 노동자 문화가 대중문화와 공모해 지배계급에 포섭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대목을 읽다 보면, 결국 이 일그러진 결혼문화가 아침드라마나 트렌디 드라마가 만들어낸 허상을 답습하는, 일종의 코스프레 쇼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하고. 다음 주말에도 나는 웨딩박람회 같은 데 돌아다녀야 하겠지만, 여전히 내게는 막막하고 답답한 그 정글 속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 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과연, 그 트렌디드라마의 모델이 되는 진짜 셀러브리티들, 혹은 상류층을 자처하는 부유층들의 결혼풍습은 어떤 형태일지, 한번쯤 뛰어들어가 조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갑갑한 일이겠지. 으윽. 으으윽. 대체 왜 나는; 결혼준비 책 같은 것을 쓰겠다고 해서 지금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런 책까지 뒤져보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