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논픽션, 이라는 추천사가 표지에 붙어 있다.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에 영향을 받기라도 한걸까, 백화점을 실제로 꼭대기층부터 지하까지, 평소에 백화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들어가보지 못할 법한, 직원들의 구역까지 취재하고 언급한 책. 누가 이 책을 기획했을까. 어느 백화점의 협조를 얻었을까. 이런 것이 궁금했지만, 책 뒤에는 참고 문헌은 잔뜩 나와 있어도 어느 백화점을 취재했는지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문맥상 정황상 신세계 본점 쪽인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특정 백화점의 지원을 받은 건 아니구나, 그랬으면 그 백화점의 안목을 좀 칭찬해 줬을 텐데. 어떻게 보아도, 백화점에 대한 집중 탐구이자 공항에서 일주일을의 포맷과도 닮은 느낌인 이런 책을 백화점에서 기획하지 않았다는 데 약간 실망감이 느껴졌다. 느려!
백화점과 패션에 관한 만화인 “리얼 클로즈”에는, 중간에 주인공의 상사인 타부치 유사쿠가 술에 취해서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백화점은 내 행복의 원천이야.” 그의 소년시절 추억들과 맞물리며 나오는 그 대사를 읽는 순간, 평소에는 아이쇼핑처럼 귀찮은 일도 없어 바로 퇴근길에 신세계백화점 지하를 지나 지하철역으로 지나가야 하는 주제에 정작 백화점 구경은 거의 하지 않는 나조차도 한번 백화점을 찬찬히 구경다니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럼 이 책은 어떨까.
백화점의 가장 화려한 부분조차도, 작가 조경란의 눈을 거치면 어쩐지 쓸쓸해진다. 조카들에 대한 기억, 일본에 사는 동생에 관한 기억과 맞물리는 일본 백화점에 대한 추억들. 가족사와 맞물린 사건들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보상하듯 구입했던 가방. 건조하게 적었기에 오히려 우울해지는 이야기들. 가장 화려한 부분조차, 무채색 필터를 들이대고 가만히 숨을 죽이며 셔터를 누르듯, 화려함은 거세되고 쓸쓸함이 남는다. 건조하다고 부르기엔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킨 어떤 것들, 읽으면서 몸을 웅크리게 하는, 내게는 과잉이다 싶은 감정의 기록들. 내밀한 고백. 지하에서 옥상까지 글로 백화점 한 채를 지으면서, 작가가 하고 싶던 말은 결국 어린시절의 이야기, 자기 인생에 대한 고백이었다. 온갖 물질로 가득찬 백화점 한 동을 쓸쓸하게 만드는.
이 책은, 백화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을 백화점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처음에 책을 구입했을 때 생각했던 대로 백화점 같은 데서, 알랭 드 보통을 보고 우리도 저런것 한번 해보자고 백화점에 대한 책을 기획했던 거라면, 이 기획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으리라. 이 책은, 작가가 살면서 한번쯤 쓰게 된다고 하고 사실은 한국 “여류” 작가들의 소설 주류를 이루는 자기고백적 문학의 일종이다. 화려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나는 읽는 내내 우울하고 짜증이 났으며, 사실은 이 책보다는 작가의 첫 책인 식빵 굽는 시간이 몇 배는 더 좋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