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덧니가 보고싶어“의 정세랑 작가님 소설. 처음 책을 펼칠때는 작가님이 드디어 좀 괜찮은 표지를 만드는 회사와 일하시는구나 싶어 기뻤고(….) 읽고 나서는 질투에 몸부림쳤다. 아니 뭐지? 이 분 왜 이렇게 “옥탑방 고양이같은 느낌의 도시 로맨스에 SF를 막 섞어 넣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거야.
한아는 환경 보호를 위해 저탄소 생활을 하고, 친환경 의류 리폼 가게를 하는 디자이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홍대 근처, 어느 골목길의 풍경을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배경도 서교동이다) 한아에게는 서른이 넘도록 취직도 하지 않는, 소위 자유로운 영혼이라면서 늘 한아를 기다리게 하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남자친구 경민이 있다. 어느날 경민은, (한아도 별똥별을 보고 싶었지만 일하느라 바빠서 못 가는데) 캐나다로 별똥별을 보러 간다고 떠난다. 그리고 캐나다에 소형 운석이 떨어진다. 같은 시기 캐나다에 갔던 가수 아폴로가 실종되고, 돌아온 경민은 어쩐지 전과는 달리 한아를 절절하게 사랑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진짜 경민과 가수 아폴로는 우주로 떠났고, 지금 한아의 눈 앞에 있는 경민은 외계인이다. 한아를 사랑해서 2만광년을 날아온 외계인. 그것도 3천년동안 전쟁이 없었던 별의 시민들에게만 주어지는 자유여행권을 진짜 경민에게 주고, 없던 감각기관을 만들고, 빚까지 지면서 2억광년을 달려와 한아의 곁으로 온.
로맨스 소설 속의 사랑이란 대체로 누구나 꿈꿀 만한 완벽한 사랑, 온 우주를 관통하여 이 사람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은 그런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비현실적일 정도의 셋팅들이 난무한다. 이 소설 속의 사랑은 홍대 골목 어디에선가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인데, 그러면서도 문자 그대로 우주를 관통하듯 날아온 완벽한 사랑이고, 결정적으로 아무리 얼굴이 똑같고 기본 셋팅이 비슷해 보여도 현실의 남자가 아니라 외계인이기에 가능한 사랑이다. (진짜 경민인 “엑스”는, 나중에 나타나지만 정말 한심하고 무책임해서 읽으면서도 분리수거하고 싶어진다.) 외계인이기에 가능한 달콤하고 완벽한 사랑의 가능성을 읽으며, “그러니까 지구인 남자는 안돼”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기까지 한다. 나는 로맨스를 못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걸 읽고 있으면 정말 부러워서 미칠 것 같다. 어떻게 이런 걸 쓰죠?
PS) 읽으면서 외계인 경민에게 제일 부러웠던 건 역시 분리수거 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