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김조광수 작품의 로맨스 코미디. 일반적인 로맨스 코미디라면 누가 거저 보여준다고 해도 볼 생각따위 없었지만, 이건 게이 로맨스 코미디. 듣기만 해도 한국에선 험난하기 그지없어서 어쩔 수 없지, 로맨스 코미디라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싶어지는 장르.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채 일단 부모님을 좀 안심시켜 드렸다가 나중에 이혼한 뒤 프랑스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는 게이 민수와, 아이를 입양하고 싶지만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입양하는게 하늘의 별 따기임을 알고 있는 레즈비언 효진이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식장을 나서자마자, 효진은 자기 애인인 서영과 함께 여행을 가 버린다. 며칠 뒤 직장(병원)에서는 아무 일도 없이 사이좋은 신혼부부인 척 하지만, 세 사람은 나란히 이웃한 집을 얻어놓고 한 집에는 민수가, 다른 집에는 효진과 서영 커플이 살며 공생관계를 시작한다.

…..가 일단 이야기의 도입부. 여기까지 본 시점에서 만감이 교차하는게,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A와 부모의 간섭을 피하고 싶은 B가 일단 계약결혼을 하고 1년만 버티기로 한다”는 정도의 내용은 이성애 커플의 이야기로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물론 위의 저 도입과 설정을 갖고 레즈비언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는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1:2의 에로물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거다. 이건 게이의, 게이에 의한, 게이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그야말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로맨스 코미디”다. 그게 갑자기 실감났다.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뽀뽀하는 척 하며 능청을 떠는 효진을 보는 순간.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로맨스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행복하고 달콤하고 장난기어린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게이 바에서 언제 이혼할거냐고 묻는 게이들, 그곳에서 마주치는 민수와 재미교포 게이 석. 만나고, 스치고, 두근거리고, 그가 유부남이니까 피하고, 그게 “부모님 안심시키기 위해 잠깐 계약결혼 상태”임을 알고 다시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마음을 채 담아내지도 못한 잡담같은 것을 하다가 끌어안고, 키스하고,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약간의 문제에 직면하고.

두 사람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서로 슬쩍 손을 잡았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얼른 놓는 시퀀스는 통으로 참 예뻤다. 거기 사족처럼 붙은, “멋진 남자는 다 유부남 아니면 게이라더니”하는 대사만큼은 좀 빠져줬으면 했지만. 흔한 이야기지만 영화를 털어 제일 마음에 안 드는 대사였음. 언젠가는 저 말이 너무 진부해서 영영 안 쓰일 날도 오겠지.

그렇게 행복한 모습들이 이어지긴 하는데, 현실이 있으니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영화를 보다가(영화관이 아니라 굿 다운로드로 받아서 봤다. CGV가 집에서 걸어서 15분, 직장에서 롯데시네마까지 걸어서 10분인데 요새 어째 거기 갈 시간도 없다.) 석의 동생과 어머니가 미국에서 돌아온 장면에서 잠깐 화면을 멈춰 두었다. 아프고 쓰라려서. 석의 동생이 석에게 해 대는 말들이, 내가 결혼 전에 가족에게 들은 말들이랑 똑같거든. “집안 망신” 운운하는 것 까지도. (그리고 나는 “망신시킬만한 집안은 되고요?”라고 하다가 한대 더 맞긴 했지) 세상에는 가족만큼 이기적인 것도 없지. 그 가족의 행복을 유지한다는 미명으로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거야. 상한 속으로 영화를 마저 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꿋꿋한 석과, 효진에게 애먼 시집살이까지 시키면서도(휴일 새벽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시부모!!!)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곱게 자란”민수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어느새 민수와 석의 게이 친구들과도 한 패를 이루어 잘 지내고 있는 효진과 서영. 아기를 입양하는 효진. 그런 모습이, 언제 이 관계를 들킬지 모른다는 민수의 불안과 함께 이어지던 중, 사건이 일어난다.

여주를 아웃팅하는 문자를 보낸 간호사가, 자기가 뭔가 정의의 화신인 척 “선생님은 속으셨어요”하는 것도, 그리고 그 소문이 온 병원에 퍼진 것도, 의사들이 효진이 과연 언제 그만둘까 수군거리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을 알면서도 짜증이 났다. 역겨운, “보통”인간들의 악의라는 것이 선명해서. 정확히는 자기가 한없이 보통이라고 믿고, 자기와 다른 이들을 걸러내고 떨궈내는 것만이 답이라고 여기는 천박저열한 인간군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이 악물고 버티는 효진과 달리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는 민수의 모습에도 짜증이 났다. 언제까지 그렇게 하나도 놓지 않고 갖고싶은 것은 다 가지려 드는 걸까. 부모님께는 착한 아들, 직장에서는 좋은 의사, 멋진 애인도 있고 부모님께 받을 것도 다 받은 채, 어떤 것도 놓지 않으려 조바심을 내며 석에게 “프랑스로 떠나자”는 민수의 찌질함이 가공할 정도긴 했다.

아저씨 외모에 소녀의 마음을 가진 게이 친구 티나가 전날 민수와 티나를 “더러운 것들”이라고 하던 호모포비아 택시기사에게 다시 걸려 길에서 두들겨 맞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와 때리던 택시기사와 함께 경찰 앞에 서서 사고의 전말을 설명해야 하던 민수는, 마침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다.

마지막은 행복할정도의 판타지. 민수와 석이, 효진과 서영이 이번에야말로 제 짝을 찾아서 행복한 결혼식을 – 그것도 부모님들까지 참석한 – 올리는 것. 그야말로 판타지처럼 행복한, 대부분의 그들에게는 현실이 되기 어려운데다 일단 대한민국의 법으로는 어떤 법적 보장도 받을 수 없는,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정말로 필요하겠구나 싶은 그런 환상이 G-voice의 공연과 함께 잠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그 만화버전을 그리고 있는 박희정 선생님의 그림체로,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졌다. 아니, 잠깐. 실사 인물들을 보다가 갑자기 이 환상적으로 예쁜 만화컷을 보여주시면 어떡합니까. 으음.

그래서 올해 본 유일한, 아니, 최근 3년동안 본 유일한, 최근 5년동안 자발적으로 본 유일무이한 로맨스코미디 영화가 이거라고 한다면 담당님이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음, 좋았다. 환상이 필요한 사람에게 환상을, 자기가 보통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라는게.

티나가 택시기사에게 맞으면서도 “죄송합니다”하고 빌던 장면이 자꾸 생각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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