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문 사립학교를 동경하던 하층계급의 소년이 그 계층 사이의 “선”을 넘어, 자신에게 금지된 것들을 누리는 이야기….. 라고 요약한다면 반만 말하는 것이고 사실은 훼이크. 이 아이의 “쫓기는 입장”을 생각하면 무리는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태연히 사람을 죽이고 치명적인 누명을 씌우는(나중에는 자기 새아버지에 대해서까지) 모습을 보면 계층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이 기질적으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사이코패스 비슷한 부류로 설정된 듯한 느낌이지만, 책 앞뒤를 보면 그냥 그 계층갈등만을 포인트로 잡은듯 하다. 음.
– 그런 면에서 알라딘 같은데 독자리뷰로 붙어있는 글들 말인데 다들 약먹고 썼나. 뭐? “하층민의 서러움을 딛고 불굴의 용기와 도전 정신으로 사립명문학교 ‘세인트오즈월드’에서 다양한 인생 경험을 이룬 스나이드는 분명 플레이어 정신을 갖춘 소유자라고 할 만하다.”라는 리뷰글을 읽고는 이거 쓴 인간이 고도의 낚시꾼인지 아니면 책을 읽기는 한건지 참…. 의심스러웠다. 음.
신임교사 5명중 한 명이,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에게 금지되었던 것을 향해 손을 내밀었던 “소년”이고, 이야기가 전개되며 의심의 방향이 그중 두 명 정도에게 쏠리게 되지만 사실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는 뻔한 전개. 그 전개에서도 책의 1/2를 읽은 시점에서 정확하게 누구인지 짚어낼 수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의 시각과, 두 사람이 보는 과거와 현재라는, 총 네 가지 시점이 교차되는 잘 짜여진 전개가 훌륭했다.
이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본 내용과는 상관없는 다음 부분.
영어교사이자 소설가 지망생이고, 한때 명문 사립학교 근처의 그저그런 하층계급 중학교를 다녔던 킨에 대한 묘사다.
사실 나는 서니뱅크파크에 입학하기 전부터 그를 알고있었다. 그는 방과후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 서니뱅크파크 학생으로는 의심스러울 만큼 단정한 옷차림에 무엇보다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옆구리에 끼고 있어서 공격의 대상이 되던 아이였다. 그때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킨이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 사건은 내게 교훈을 주었다. 투명인간이 되자.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너무 똑똑하게 보이지 말자.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지 말자. 분위기가 이상하면 냅다 뛰어 달아나자. 킨은 달아나지 않았다. 그것이 언제나 그의 문제였다.
그의 문제였건 아니건 상관없이, 소년시절의 킨은 얼마나 용감했던가. 그리고 어른이 된 뒤의 킨 역시도. 영리하고, 글을 쓰겠다는 마음 또한 놓지 않고.
분명 소년시절의 킨이야말로, 이 책의 앞뒤, 또는 저 거지같은 리뷰들만 보고 이 책의 내용을 어림짐작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주인공상이겠지. 서민층, 특히 서니뱅크파크 학교의 분위기로 볼 때는 슬럼가의 하층민 학생들이 많은 듯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하층계급 출신으로, 지금의 자신보다 좀 더 나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 잡히지 않는 것을 향해 손을 내미는 소년이란 때론 얼마나 고결하고 아름다운가. 그러나 현실이란, 다른 이들과 다른 모습, 모두가 속해 있는 시궁창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려는 사람을 향해 주변 인물들이 행하는 행동이란, 뒤통수를 잡아당겨 그 시궁창에 다시 처박고 때로는 숨도 쉬지 못하게 하여 다시 기어오를 생각일랑 하지 않게 하는 게 거의 다지.
아이들만 그런것 같은가. 다 큰 어른들도 그런다. 책을 보고, 주말에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들어야 했던 비아냥과 조롱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막히는걸. 그들이 원하는건 결국, 다들 자기들처럼 그냥 별 깊이있는 생각 없이, 책을 읽거나 지금의 모습에서 더 나아지려는 생각같은 것 없이, 맛집이나 명품가방에 대한 동경이나 기껏 자기발전이라고 한다는 거야 재테크 뿐인 뭐 그런 것들로만 머리를 채우고 살기를 바란 거겠지. 누군가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는건, 나머지의 멍청이들에게는 때론 아주 위험한 일이니까. 거기서 “달아나지 않은” 소년을 본다.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 없는, 이 모든 일들을 그저 체스 게임처럼 생각하는, 어쩌면 사이코패스일지 모르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리고, 아무리 책을 받아서 리뷰를 하는 거라도 적어도 책 내용정도는 제대로들 적어줘라. 바보들. 어떻게 앞표지 뒷표지만 보고 상상을 해서 리뷰를 쓰는 것도 아니고.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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