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디텍티브 예고

[가정교사 탐정 맥모닝]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사건

대부분의 여자들은, 파티를 열 핑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거의 천재적인 소질을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림절 주간에 크리스마스를 지나 새해로 넘어와 이제 조금 한가해지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밸런타인데이라고 여기저기의 초대장이 쟁반 위에 쌓이고 있으니. 대체 새들이 교미하기 시작하는 날을 기념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괜히 이런 일에 이름이 팔리고 있는, 천 년 전에 죽은 주교만 불쌍하지. 이런 식으로 무슨무슨 날을 만들어 댈 생각이라면 차라리 매 달 14일마다 기념일을 만들어서 파티를 하지 그러나. 나는 몰리 숙모님이 보내주신, 위스키가 들어간 봉봉 상자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 초콜릿도. 캐드버리(Cadbury)사에서 주체할 수 없게 넓혀놓은 아프리카 플랜테이션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카카오를 주체를 못 하고 있다가 이렇게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라며 화사한 상자에 담아 팔기 시작한 상술의 극치인 것을, 밸런타인데이에 너나할 것 없이 좋다고 주고받는 꼴이라니.

 

그나마 작년까지는, 그런 어리석은 꼴은 집 밖에서 보는 것으로 족했지만, 무릇 평화란 잃은 뒤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니.

 

“내가 말한 종이하고 책하고 꼭 사와야 해!”

 

꼬마 비비안 녀석, 어디 줄 곳도 없으면서 벌써부터 밸런타인 카드를 만들겠다고 설치는 거다. 그런데다가.

 

“밸런타인 카드 만들 도안이 잔뜩 들었다잖아. 넬리, 나 레이스랑 리본도!”

 

“예, 아가씨. 미스 맥모닝, 다른 것은요?”

 

“그림물감도 조금 사다주세요. 벌써 다 떨어졌네요.”

 

“예, 그러죠.”

 

미스 맥모닝이 비비안을 말릴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지금 어린애에게 뭘 가르치겠다는 거야.

 

“미스 맥모닝!”

 

“예, 주인어른.”

미스 맥모닝은 특유의 그, 애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입으로야 주인어른, 주인어른 하고 말을 해도, 퉁명스럽기로는 이 나라 제일일 듯 한 이 가정교사가 정말 한 번이라도 나를 이 집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기는 있었을지 모르겠다. 여튼, 할 말은 해야 했다.

 

“왜 비비안을 부추기는데?”

 

“부추긴 적 없습니다.”

 

“밸런타인이니 사랑이니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아?”

 

“지난 크리스마스 때 빙리 댁에 가셨잖습니까. 저도 따라갔고요.”

 

“농담해? 그 댁 애들도 겨우 비비안보다 한두 살 많은 것 뿐이야. 설마 그 댁 아이들에게서 배워 왔다고?”

 

“아뇨, 하지만 빙리 부인께서도 재작년 무렵부터 크리스마스 카드나 부군께 전할 밸런타인 카드를 만드는 일을 따님들과 함께 하셨다고 말씀하셨기에. 레이디가 되는 데는 그런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참고할 책과 자료에 대해 여쭤보기는 했습니다.”

 

“나 어렸을 땐 그런 것 안 해도 아무 상관없었어.”

 

“물론, 주인님께서는 커서 레이디가 되실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할 말이 없었다. 여자에게 굳이 말싸움으로 이기려 하지 않는 것 또한 신사의 미덕이겠으나, 미스 맥모닝에게 말싸움으로 이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실로 여러 가지 표현이 떠오르는 것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나는 구두 끝으로 카펫을 긁었다. 어쨌든 보통의 숙녀들이 로맨스나 파티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할 부분까지 모두 다 그 악랄하게까지 느껴지는 관찰력과 숙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논리정연함으로 가득 채워버린 듯한 그녀의 작은 뒤통수를 노려보며, 그런 것 만들어봐야 어디 줄 데도 없으면서, 하고 들릴락 말락 하게 중얼거렸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신사에게는 여기저기서 쓸모없는 초대장들이 잔뜩 날아오기 마련이다. 다 거절했지만, 몰리 숙모님의 절친한 친구인 라비니아 펜들턴 부인의 초대까지 거절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밸런타인데이라고 파티니 초콜릿이니 떠들어대는 비비안이 마음에 걸려, 나는 모처럼 아이를 불러 함께 풍성한 점심식사를 들었다. 밸런타인 카드에서 그새 흥미가 식어버린 비비안은 이번에는 스펜서 백작부인의 루비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떠들어대었고, 나는 대체 이 아이가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다니는지가 궁금했다.

나는 외출 준비를 했다. 시종인 토머스가 가져오는 커프스를 고르다가, 나는 문득 죽은 형이 쓰던 것을 집어들었다. 아버지가 형의 가정교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서자였던 나와 달리 당당한 적자였던 형은, 내가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대림절을 앞둔 11월의 어느날 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나 보다 일곱 살 위인 형이, 세상 떠나기 얼마 전 발레리나와의 사이에서 어린 딸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 아이가 꼬마 비비안이었다.

 

린튼 가문에는 딱히 형을 대신하여 가문을 이을만한 남자 친척이 없었고, 그 자리는 내게 돌아왔다. 서자라고 멸시하던 친척들은 이제 내게 손을 비비고 있지만, 과연 돌아서서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왜, 뻔히 알면서도 같은 일들을 반복하는 걸까. 서자인 나를 늘 무시하고 쥐어박던 형은 왜, 좋아했다는 여자에게 혼외자를 낳게 했을까. 한때의 사랑이란 덧없이 흘러가고, 남은 흔적처럼 태어난 아이는 평생을 자신의 죄 아닌 죄를 곱씹으며 살아야 할 텐데. 조심들을 하지 않고서. 나는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형을 생각하며 커프스를 달았다.

 

 

 

 

 

 

펜들턴 가의 파티는 그 부인의 인품만큼 좋았다. 그 집 주방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초콜릿 봉봉도 일품이었다. 그 집 하인의 말로는 귀신이 와서 훔쳐먹는 것처럼 봉봉이 자꾸 없어진다고 했는데, 그 말 그대로였다. 나는 벽화(wall flower)처럼 줄곧 벽에 달라붙은 채 샴페인과 봉봉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 이아고 경.”

 

물론 펜들턴 부인은 내가 파티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얼른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디 갔었어요. 이아고 경에게 어울릴 만한 젊은 숙녀가 있어서 소개하려고 했는데.”

 

“천천히 생각해 볼 게요.”

 

“몰리가 늘 이아고 경 걱정 하는 것 알지요?”

 

“예, 부인.”

 

“그래요, 그럼 편안히 즐기도록 해요.”

 

다행히도 펜들턴 부인은 나를 설득하는 일을 순순히 그만두고, 홀로 돌아가 안주인으로서 파티에서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섬세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레이디의 소양이란 말이지. 언젠가는 비비안도 저런 숙녀가 되어야 할 테니까. 나는 펜들턴 부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잠시만요, 이아고 경.”

 

언제 보았는지, 펜들턴 부인이 얼른 나를 따라나왔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변명하며 작별인사를 하자, 사려깊은 펜들턴 부인은 꼬마 비비안에게 주라며 봉봉 한 상자를 건네셨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 얼른 집으로 향했다. 초콜릿은 비비안처럼 어린 여자아이들에게는 너무 자극적인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펜들턴 부인은 세 딸을 훌륭하게 키워 낸 어머니였다. 그런 정도는 그분이 더 잘 아시겠지.

 

 

 

 

 

 

다음 날 나는 티타임에 비비안과 미스 맥모닝을 불렀다. 펜들턴 부인의 봉봉 상자를 내놓자 비비안의 뺨은 기쁨과 설렘으로 발갛게 물들었다. 차 준비를 기다리며 비비안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듣는 것도, 어쩐지 나쁘지 않았다. 차를 마시며, 나는 별 생각 없이 봉봉 하나를 집어 깨물었다.

 

그리고 내 입 안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정확히는, 뭔가 바위를 하나 깨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턱과 머리가 뭔가 한 대 맞은 듯 찌릿하게 울렸다. 나는 급히 내 입 안에 있는 단단하고 수상쩍은 것을 뱉어냈다. 뭔가 돌이나 뼛조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것은.

 

“다이아몬드!”

 

“아뇨, 미스 비비안. 저건 루비예요.”

 

사람의 어금니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저런 말이나 하고 있는 비정한 가정교사의 말대로, 루비였다. 왜 이런 것이 초콜릿 봉봉 안에 들어 있는지 생각하는데, 미스 맥모닝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모스 경도로 9예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하죠.”

 

“그럼 저걸로 유리도 자를 수 있어요?”

 

“물론이에요, 미스 비비안.”

 

“아, 진짜. 지금 그게 문제야?”

 

“진주였으면 바로 망가졌을 텐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사람이 다쳤잖아!”

 

“안 다치셨잖아요. 피 한 방울 안 납니다만.”

 

미스 맥모닝은 다가와서 내 얼굴을 한 번 들여다보고는 태연히 대꾸했다.

 

“그보다는 이거, 모양이나 크기나 스펜서 백작부인의 도난당한 루비 같은데요.”

 

“그게 왜 여기서 나오겠어, 불가능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에요. 펜들턴 부인의 맏아드님인 조셉 도련님은 스펜서 백작부인의 동생인 브라이언 경과 친한 친구라고 들었는걸요. 뭔가 접점이 더 있을 거예요. 주방에 좀 가봐야겠네요.”

 

“잠깐, 비비안 앞에서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마. 백작부인의 보석이니 뭐니. 난 금시초문이라고. 대체 이런 소문은 어디서 들어오는 거야?”

 

“제가 말하지 않았어요. 저도 하녀들에게 들은 이야기인걸요.”

 

“하녀들이 그런 걸 알 리가 없잖아.”

 

“왜 몰라요, 하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소문이 빨리 퍼지는데. 지난 번에도, 공작부인 댁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주인 어른보다 토머스가 더 잘 알고 있던 것 기억 안 나세요? 여튼, 서두르셔야겠네요. 우선 스펜서 백작부인께 편지를 쓰세요. 부인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오후 티타임에 잠시 시간을 내주셨으면 한다고요.”

 

“이봐, 미스 맥모닝.”

 

“그리고 펜들턴 부인께는…… 제가 찾아뵐까요?”

 

“아니, 같이 가지.”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건 또 무슨 희한한 대답이야. 나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히 하인을 먼저 보내 펜들턴 댁에 방문을 알리고 시종을 불러 옷을 갈아입는 사이 맥모닝은 비비안을 달래고, 비비안이 좋아하는 곰 사냥이 나오는 그림책을 꺼내주고는 외출준비를 했다. 외출준비라고 해 보아야, 머리를 다시 빗고 새 프록으로 갈아입는 정도였지만. 그러고 보니 이 암록빛 프록도 지난번 달튼 부인이 아들의 약혼녀가 겪은 불운한 사고에 대해 진상을 밝히는 데 도와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지. 미스 맥모닝은 그 차림으로 한참동안 주방을 돌아다니더니, 외출준비가 끝났다며 서재로 올라왔다.

 

 

 

그녀는 마차 안에서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고, 나는 지루해서 몇 마디 말을 걸다가 성의없는 대답만을 돌려받았다. 펜들턴 댁에 거의 다 도착해서야, 미스 맥모닝은 겨우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주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고 가서 물어 볼 거야?”

“초콜릿 봉봉이 너무 맛있어서, 레시피를 배우러 왔다고 말씀드리면 무리없지 않을까요?”

물론, 아무리 뚱한 얼굴을 한 채 물어본다고 해도 그런 말을 듣고 싫어할 귀부인이 있을 리가 없다. 펜들턴 부인은 차 준비를 시키고, 초콜릿을 만들었다는 서른 살 남짓한 요리사를 불러들였다.

“괜찮으시다면 제 또래라는 보조 요리사도 함께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아, 물론이에요.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보내주신 초콜릿 봉봉 중에, 아주 특별한 내용물이 든 것이 있었거든요.”

잠시 후, 불안한 표정을 한 젊은 요리사가 올라왔다. 미스 맥모닝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릴리 톰슨 양?”

“예, 그런데요.”

“펜들턴 부인, 괜찮으시면 하인들에게 문을 닫고, 릴리 양을 붙잡아달라고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제부터 잠시 중요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미스 맥모닝은 느릿느릿, 위기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지만 묘하게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하인이 오기 전에, 요리사가 먼저 릴리를 붙잡았다. 하인 두 명이 릴리의 어깨를 붙잡은 뒤에야, 미스 맥모닝은 내게 눈짓을 했다.

“주인어른.”

“아, 그래.”

내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에 곱게 싼 그 루비를 꺼내자, 릴리는 짐승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마치, 그 루비에 악마라도 붙어있는 것 같았다.

“여기 오기 전 까지, 요리사들과 주방 하녀들과 이야기를 하다 왔어요. 아시겠지만 하인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소문이 퍼져나가거든요. 이 댁의 릴리 톰슨 양이 좋아하는 남자분이 있는데, 그분이 하필이면 이번에 루비를 잃어버린 백작부인의 남동생인 브라이언 경이라는 이야기도 듣고 왔어요.”

“어머나, 릴리!”

맏아들의 친구인 브라이언 경의 이야기가 나오자, 펜들턴 부인은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시녀가 냄새약을 가져오고, 그녀가 진정이 된 뒤에야 미스 맥모닝은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브라이언 경은 이 댁에 자주 놀러 오셨지요. 그리고 릴리 양은 브라이언 경을 짝사랑했고요. 이 루비가 없어진 나흘 전, 바로 그 날도 브라이언 경은 여기 와 계셨어요. 물론 브라이언 경은 도박 때문에 늘 빚을 지고 계셨으니까, 중요한 용의자 중 한 명이에요. 그리고 릴리 양에게 이 보석을 어디든 숨겨달라고 했을테고요.”

“……”

“파티 준비를 위해 만들고 있던 초콜릿 봉봉 속에.”

“난…… 잠깐만 맡아 두면 된다고 하셔서.”

“그리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초콜릿 봉봉의 위치가 바뀌었겠죠?”

“그걸 잃어버리면 난 버림받았을 거라고요!”

“버림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감옥에 가는 게 문제죠, 그리고 생각해 봐요. 브라이언 경은 당신과 신분이 다른 사람이에요. 정말로 진지하게 당신과 결혼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리고 하필이면 이 루비를, 저희 주인어른이 우적, 하고 씹어 삼키실 뻔 했고요.”

“이봐, 미스 맥모닝.”

“천만 다행히도 루비의 경도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하니까 별 문제는 없었지만요.”

“미스 맥모닝, 난 이가 부러질 뻔 했어.”

“안 부러졌잖아요. 엄살 부리지 마세요.”

젊은 여자의 오열이 귀를 울렸다. 젠장, 왜 남자라는 놈들은 자기보다 신분 낮은 여자들을 자꾸 건드려서. 사생아를 낳거나, 신세를 망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자기가 저지른 죄를 덮는 데 쓰고 버리거나. 그 브라이언 경의 유들거리는 낯짝을 주먹으로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릴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맛있어서 유령이 훔쳐 먹는 게 아니라……”

“찾고 있었던 거죠. 그 루비가 든 봉봉을.”

미스 맥모닝도 딱한 듯 중얼거렸다.

“왜 그런 남자에게 반한 거예요.”

이제 기껏해야 그녀에게 남은 인생이란, 감옥에서 십 년이 넘게 썩다가 겨우 나와서는, 취직도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몸을 팔다가 거리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펜들턴 부인의 앞에서 죄를 밝힌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랴, 덮기에는 너무 큰 일인 것을.

“릴리.”

“예, 마님.”

“서섹스에 사시는 내 이모님, 덩컨 부인께서 솜씨좋은 요리사가 필요하다고 늘 말씀하셨단다. 가서, 거기서 덩컨 부인을 모시며 몇 년 조용히 지내지 않겠니? 그 뒤에는 추천장을 써 줄 테니 다른 곳으로 가도 좋고, 내 집에 돌아와도 좋고.”

“마님……?”

“단, 브라이언 경과는 헤어져야만 해. 네가 어디로 갔는지 알게되면 해코지를 하러 찾아갈 수도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이언 경과 너는 신분이 달라. 불가능한 일이야. 그런 일 때문에, 솜씨좋은 네가 신세를 망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구나.”

“마님……”

“이아고 경. 백작부인께도 벌써 말씀을 드렸나요?”

“아뇨, 이제부터 드리러 갈 생각입니다.”

“그래요, 그럼 나도 같이 가지요. 미스 맥모닝, 당신의 지혜에 대해서는 전부터 부인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지만, 직접 보고 나니 마치 마술을 보는 것만 같군요.”

“과찬이십니다, 부인.”

“아니에요, 백작부인의 보석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하마터면 바닥에 떨어질 뻔 한 내 평판까지 구해줬어요. 정말로 고마워요.”

사실, 미스 맥모닝은 사례 같은 것을 바라고 그런 일을 돕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칭찬과 감사가 그녀에게는 제일 좋은 보상인 것 같았다. 펜들턴 부인이 외출 준비를 하는 사이, 미스 맥모닝은 릴리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에 그런 말을 했다.

“아무리 예쁜 말로 꾸민들, 그건 초콜릿 같은 거예요. 쓰디쓰고 푸석푸석한 것에다가 설탕과 버터를 잔뜩 넣어서 달콤하고 맛있고 뭔가 천상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잖아요,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닐 텐데.”

그건 아마도 사랑에 대한 말이었을 거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스 맥모닝은, 그런 일에는 무감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미스 맥모닝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펜들턴 부인과 함께 백작부인을 찾아갔다. 보석을 전하고, 사실을 알리자, 백작부인은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펜들턴 부인은 어린 하녀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청했고, 보석을 되찾은 백작부인은 귀부인다운 너그러움으로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사랑과 초콜릿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미스 맥모닝의 말 그대로 본질은 쓰디쓴 것에 그저 달콤한 환상을 끼얹은 것 뿐이라는 것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도, 때로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싸게 도매금으로 팔아버린다는 것도. 그 그늘에서 누군가는 울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을 잠시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눈부신 달콤함 또한, 그 안에는 있을 것이다. 나는 켄징턴 가든을 지나 그 다음 골목에서, 가게에 진열된 캐드버리 사의 초콜릿을 보았다. 밸런타인 데이라고, 백조를 끌어안은 다나에나 프시케에게 입맞추는 에로스의 그림이 그려진 화려한 상자에 담긴 초콜릿이 창가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꼬마 비비안에게 줄 초콜릿 봉봉을 조금 사며 미스 맥모닝의 몫으로 초콜릿이 담긴 작은 선물상자를 하나 더 샀다.

“정말 뜻밖이네요. 주인어른께서는 밸런타인 데이라고 하면 새들이 교미하기 시작하는 날을 기념하다니 이게 웬 해괴한 일이냐고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

“이봐, 미스 맥모닝.”

물론, 딱히 별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건 감사일까. 루비를 깨물고 비명을 지르는 내게는 관심도 보이지 않고, 그 보석이 어떻게 초콜릿 속에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은 퍽 괘씸했지만, 그래도 미스 맥모닝 덕분에 백작부인은 보석을 되찾았고, 자기도 모르게 그 보석이 든 초콜릿을 주고받았던 펜들턴 부인과 나는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이 초콜릿은 그저 그에 대한 감사일 뿐이다. 나는 미스 맥모닝의 손에 상자를 쥐어 주며 다시 한 번 그 점을 확실히 했다. 미스 맥모닝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대체 이 집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지, 생각할수록 참으로 건방진 가정교사였다. 하지만 그녀는 곧, 흰 봉투 하나를 들고 나와 내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 받으세요.”

“밸런타인 카드?”

“미스 비비안과 함께 만들던 거예요.”

“내게 주는 거야? 당신이?”

“딱히 주인어른 생각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무데서도 그런 것을 못 받아오시는 것을 보니 좀 딱해서요.”

“이봐, 미스 맥모닝.”

어쩐지, 뭔가 주고받긴 했는데 묘하게 기분은 비오기 직전의 날씨처럼 어두워졌다. 나는 투덜거리며 서재로 올라가 봉투를 열었다. 그 여자 취향이라면 밸런타인은 밸런타인이로되 또 뭔가 수상쩍고 이상한 게 그려져 있을 테지, 생각하며 꺼내 본 카드에는, 그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한 장면이, 피츠윌리엄 다아시를 기다리는 엘리자베스 베넷의 모습이 꽤 솜씨 좋은 색연필화로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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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 탐정 맥모닝]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사건”에 대한 3개의 응답

  1. lily 아바타
    lily

    음??.. 묘한 기시감이??
    (네, 피츠윌리엄 다아시를 좋아햐셨죠…)
    ‘그’가 특별히 모자란 사람이 아님에도 ‘그’의 판단력을 신뢰한다는 데에 있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가 있는 것이겠지요^^

    (저도 당시 다아시에게 매력 느껴서 얼마동안 열심히 콜린 퍼스 필모그래피를 찾곤 했지요…^^)

  2. 김지은 아바타

    lily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쓴 덧글 삭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1. heyjinism 아바타
      heyjinism

      예. 아래 글 중 하나 제가 삭제할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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