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 찬가

보노보 찬가 – 조국, 생각의 나무

idiot는 바보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어원이 공적인 일에 무관심한 성인 남자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왔다는 대목이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사실은, 사람은 공적인 일에 무관심할 수가 없다. 신문을 보고 분개하고 이야기하고, 또 생각하고. 그건 당연한 본능이다. 그 본능은 당연하게도 대학입시가 우선순위인 학교와, 국민이 정치에 관심 가져봐야 다치기밖에 더 하느냐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베이스에 깔고 계신 –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어렵게 공부하여 교사가 되신 – 아버지에게 거의 강요를 당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혼났다. 그 바람에 나는 꽤 혼선을 빚었는데, 어떻게 아버지와 화해하고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적어도 집에서만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정당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예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냥 정치에 대해 무관심 혹은 냉소로 대하는 자세로 굳어져버릴 뻔 한 것이다.

천만 다행히도 이게 깨진 것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내려가면서부터였다. 전북에서 1년 구르다 돌아왔더니 전라도 물이 들어 왔다고 한탄하셨지만, 죄송하지만 그게 진짜 알맹이인걸요. 흐흐. 그럼에도, 나는 대놓고 아버지 앞에서 모 당을 지지하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여튼 속으로야 머리를 굴릴지라도 겉으로는 정치적인 입장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어떤 식이었느냐 하면 직장상사 앞에서는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직장동료 앞에서는 문국현에 호감을 보이며 친구들 사이에서는 진보신당이나 기타 야당, 사회당 덕후위원회(;;;;)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그게 이 험한 세상 살아남는 방편이라는 것이, 이 얼마나 비겁한 일이겠느냐만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절친 놈도, 가끔은 한탄했다. 세상은 21세기가 되었는데, 19세기의 망령과 박정희 시대의 망령들이 발목을 잡는다, 우리를 입다물게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없게 한다. 말하면, 그것들이 네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소근거린다. 4.19때나 광주민주화운동때 다들 그렇게만 생각했으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런 놈들이 다스리고 있겠지. 하고 말해봤자, 광주는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그냥 사태다. 빨갱이 운운 소리만 안 나와도 다행이다. 보수적인, 몸을 사리는 법 밖에 배우지 못한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가 우리에게 가르치려 한 것이 그런 것이었다. 그런 것이, 쓰고 아팠다.

침팬지들의 세상에서 손에넣은 눈곱만큼의 기득권을 아둥바둥 지키며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유산으로 물려주려 하시는 것이 사실 뭐 아버지들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을 거다. 그분들은 어려서 전쟁을 겪고 나라가 몇번을 뒤집히는 것을 보며 좀 자라서는 박정희가 20년동안 대통령을 해먹는 것을 보시며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오셨고, 그래서 21세기가 되었어도 그분들의 개념은 우리가 국민이라 불리기는 불리되 그 본질은 여전히 백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계시겠지만, 그리고 그 고생끝에 얻은 지금의 삶에 대해 자수성가라고 스스로 인식하며 그, 침팬지들의 세상에서 그렇게 기득권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얄팍한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당연하게도 그 안에 편입되는 쪽을 택하셨겠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 그야말로 “지역주의의 수혜지역인 경상도 지방에서 남성으로 자라나서, 입시경쟁의 승자가 되어 대학에 들어간 후 ‘미국 물’까지 먹고 돌아왔으며, 집값 비싼 강남 지역에 거주하면서 ‘학벌’의 정점이라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침팬지 세상의 승자, 먹이 피라미드에서도 한참 윗길에 있을 조국 교수가 보이는 삶의 태도, 그리고 딱딱한 내용을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풀어나가면서도 결코 독자를 무시하거나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진지한 자세를 보며, 요절하지 않는다면 장차 기성세대가 되고야 말 지금의 세대가 지난 세대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지금의 직업을 갖고 아침 아홉 시에서 오후 여섯 시 사이에 국가의 정책에 대해 반하는 말을 하는 것은 웬만하면 자제해야 하고(우리 국장님 표현이다. 천안함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많겠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나랏녹을 먹는 입장이니 그런 이야기는 오후 여섯시 지나서 해달라고 하시더라.) 특정 정당에 대해 대놓고 지지하거나 정치기부금을 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비판만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 대놓고 말하지 않더라도 빙 돌려 말하는 지혜만은 발휘할 수 있을 거다. 나이가 들더라도. 언젠가 태어날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될지, 생각하겠다.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