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펼치자마자 실로 다양한 죽음이 담겨 있는 가계도가 나온다. 일가족 몰살, 버찌씨가 목에 걸려 죽음, 권총 자살. 대체 이건 뭔지. 이 불길한 가계도를 대충 훑어보며 혀를 찼다. 운명적인 한 가족의 비극, 뭐 그런 이야기인가. 하고 읽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뜻밖에도 웬, 아주 괜찮은 신사가 먼저 나온다. 조지프 씨, 예전에 폴란드의 풍차라고 불렸던 양지를 손에 넣었다는 우아하고 고상한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려 검박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호화로운 식탁보와 냅킨 등을 갖고 있고 어쩐지 보통 사람들과는 계층이 다른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궁금해하고 마을 처녀들은 추파를 던지지만, 그의 가구와 세간은 뜻밖에도 별 볼일이 없다. 사람들의 의심이 극에 달했을 무렵 그가 짧은 옷을 입은 예수회, 즉 법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에게 관심을 보이던 마을의 두 노처녀는 사람들의 조롱을 사게 된다. 그러나 이 조지프 씨는 순식간에 그녀들을 불명예에서 건져내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존경, 자기도 모르게 숭배하게 된다. 그는 이곳의 범속한 사람들과는 아예 격이 달랐던 것이다.
한편 이 마을 근처에는 폴란드의 풍차라는 영지가 있는데, 이것은 제정이 몰락한 직후 멕시코에서 돌아온 코스트라는 남자가 세운 저택이다. 그는 자선을 베푸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잔인하고 격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두 딸을 시집보낼 나이가 되고 중매쟁이 오르탕스 양이 찾아와 좋은 집안의 자제들을 소개하지만, 코스트는 신이 자신을 너무나 많은 시련으로 시험했기에 자신은 신이 잊어버린 가문을 원한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언제나 붉고 극적인 갑작스러운 운명의 장난으로 두 아들과 아내를 잃고, 그는 딸들이 그저 평범한 인생을 살아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오르탕스는 자신이 소개한 청년들이 둘 다 800년동안 평범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가문 출신임을 보증하며 이 결혼을 성사시킨다. 하지만 몇년 뒤, 코스트는 낚시바늘에 찔려 죽고 그의 두 딸 중 아나이스는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아나이스가 아이를 낳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골에 보내진 아나이스의 딸 마리는 버찌 씨가 목에 걸려 질식하여 죽었다. 코스트의 또 다른 딸인 클라라 부부와 아이들은 베르사이유 열차 사고로 죽는다. 코스트 가는 그야말로, 신의 악의어린 관심을 지독하게 받는, 저주받은 집안이었던 것이다.
아나이스의 목숨과 바꾸어 태어난 아이인 자크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 조제핀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자크의 아이들인 장과 쥴리는 학교에서, 코스트 가의 비극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유령이라고 놀림을 당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며 아이들의 마음은 닫혀간다. 또다시 비극이 이어져 가족들이 모두 죽고, 쥴리는 미친 여자 취급을 받으며 폴란드의 풍차 저택을 소유하게 된다. 무도회에서 야유를 받고 정신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쥴리는 도망치고, 조지프 씨를 만난다. 대범한 그는 쥴리와 결혼하고 폴란드의 풍차를 그 저주받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집안을 일으킨다. 조제프는 정상적인 죽음을 맞고, 이제 모든 저주는 끝난 것 같다. 하지만 쥴리와 조제프의 아들은 어머니와, 반신불수인 아내를 버리고 폴란드의 풍차를 떠나고, 쥴리는 아들을 찾으려 헤매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어째서 조지프 씨가 쥴리와 결혼하고 살아있는 동안만, 그 저주가 멈추었을까.
처음에 코스트는, 잔인하고 격렬한 기질과 자선가라는 양 극단적인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의 두 딸들도 섬세한 성격이고, 자크는 태어날 때 부터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라는 원죄를 지고 있었으며, 장과 쥴리는 아이들에게 코스트 가의 비극을 들으며 유령 취급을 당한다. 그 섬세한 기질이 유전되는 가운데, 코스트 가는 저주받았다고 이들이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면, 그 믿음이 비극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었을지. 그것이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였다면 이성적이고 침착한 조지프 씨가 이 집안을 장악한 동안에는, 쥴리가 자신의 남편을 굳게 믿는 동안에는 비극의 연쇄가 잠시나마 비켜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결국은, 숙명이고 운명인 이 모든 비극적 죽음이 결국은 “믿는 마음”,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마음” 몇년 전에 유행했던 시크릿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 스스로가 그 섬세한 성격을 하고 정말로 그리 믿었기에, 그 불행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