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고전읽기-053]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민음사 세계문학 180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얼마전 타블로 사건도 그렇고, 그래, 카타리나 블룸처럼 차라리 그 기자놈을 쏘아 죽이고 싶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평범한 이혼녀이자 유능한 가정부로 근면하게 일한데다 좋은 집주인을 만나 젊은 나이에 집과 차까지 소유한 카타리나 블룸. 그녀는 댄스 파티에서 호감가는 남자를 만나 함께 어울리고 밤을 보낸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있을법한 평범한 일상.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남자는 사라지고 경찰들이 들이닥쳐 남자의 행방을 묻는다. 어젯밤 카타리나와 함께 지낸 괴텐이라는 남자는 은행 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쓰고 있는 수배범이라는 것.

그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지고, 카타리나는 범인의 연인, 정부, 혹은 그가 도망치도록 도와주었다는 혐의로 취조를 받는다. 그녀를 때때로 방문했다는 신사, 그녀가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반지가 그녀와 범인과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그러나 그에 대해 카타리나는 결백하다. 물론 경찰로서는 그와 관련된 조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자이퉁”지의 기자였다.

본문 중에서 카타리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자이퉁을 본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 신문은 그렇게 권위있는 정론지라기보다는, 노동계층이 흔히 보는 황색언론 삘이 섞인 신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자이퉁의 기자 베르너 퇴트게스와 사진기자 아돌프 쇠너가 카타리나의 일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분명히 앞 페이지에서 경찰과 나눈 대화는 퇴트게스의 손을 거쳐 소위 “낚시성” 기사로 거듭난다. 호감가는 남자와 어울리다가 하룻밤 같이 보낸 평범한 이혼녀의 일상은, 신문을 보고 온갖 섹스광고 같은 것을 우편함에 처넣는, 분명히 우리 주변의 선량한 이웃이었던 사람들로 인해 파괴되기 시작한다. 요즘 시대로 치면 싸이에 줄줄이 성지순례를 다니는 악플러들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다 수술을 받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여 딸의 일도 알지 못했던 카타리나의 어머니는, 병원 페인트공으로 변장하고 들어와 인터뷰를 따낸 퇴트게스로 인해 충격을 받고 갑작스레 숨을 거둔다. 어머니의 시신을 확인하고, 그 시신이 시체 안치소를 떠난 뒤에야 울음을 터뜨리는 카타리나. 그러나 자이퉁은 여전히 그녀를, 시신을 보고도 울지 않는 냉혹한 여자이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원인은 그녀에게 있다는 식으로 떠들어댄다.

멀쩡한 여자가 살인범의 정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가 되고, 공산주의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한 마디 했던 카타리나의 아버지의 말은 그녀의 부친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증거가 되어버린다. (통일 되기 전의 독일이라는 점을 감안하자) 그리고 단독 인터뷰를 수락한 카타리나 앞에 나타난 이 뻔뻔한 황색지 기자 퇴트게스는 그녀에게 섹스를 요구한다. 그런 퇴트게스를 쏘아버린 카타리나는 경찰에 자수한다.

기자 개새끼 소리야, 멀쩡한 사건들이 황당하게 되돌아오는 꼴들을 보면서 밥먹듯이 하던 말이다. 같은 사안도 일간지마다 왜곡의 정도와 방향이 다르다.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그 실체를 볼 수도 없을 만큼. 타블로 사건만 해도 그렇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몰아세우는 악플러들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그런 사안이 있을 때 언론이 부추기는 면도 적지 않았다. 얼마 전 여교사와 중학생의 성관계도 그렇다. 그런 일이 있을 때의 대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교사의 사진을 찾고 남편이나 아이들의 싸이를 찾아 털려 드는 사회는 이미 건강하지 못하다. 안전한 익명에 숨은 악플러들과, 거대 언론사의 비호를 받는 기자들 어느 쪽이라도,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잊고 있다. 한때 여동생이 스포츠지 기자를 하면서 제목을 퍽 낚시스럽게 붙이는 것을 보고 걱정한 적이 있었다.

여동생이 기자 노릇을 그만두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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