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스 불바

[고전읽기-052] 타라스 불바(니콜라이 고골) 민음사 세계문학 211

타라스 불바
타라스 불바

국민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 꽂혀 있던 계림문고에서 “대장 부리바”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책을 다시 읽었다. 그때는, 이거 미친 놈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타라스 불바. 지금도, 아버지라는 이유로 자식의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적어도 그의, 카자크(코사크)로서의 자부심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고집세고 가부장적이며 자부심 강한 카자크 지휘관인 타라스 불바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두 아들을 당당한 전사로 훈련시키기 위해 자포로제 세치 병영으로 데리고 간다. 하지만 오랜 평화로 인해 자포로제 세치의 분위기는 (그의 기준에서는) 타락해 있었고, 타라스 불바는 이런 분위기에서 아들들을 전사로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지휘관들을 꼬기고 대중을 선동하여, 분위기 쇄신과 두 아들, 그리고 카자크 청년들의 실전 경험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마침 변방에서 벌어진 폴란드군과의 교전을 핑계로, 정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자포로제의 카자크들을 총동원하여 반격에 나선 것이다.

말수가 적고 성실한 장남 오스타프, 그리고 감수성이 예민한 차남 안드리. 누구보다도 훌륭한 전사가 될 줄 알았던 안드리는 전장에서 예전에 사랑했던 폴란드 귀족 처녀와 다시 만나고,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민족을 배신하고 폴란드의 편을 들어 싸운다. 그런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는 불리바. 그리고 마침내 전세가 기울어, 불리바의 자랑스런 아들 오스타프는 그만 폴란드의 수도에서 처형당하기에 이른다.

“아버지, 아버지는 어디 계십니까? 제 고통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

오싹하면서도 기가 막힌, 그 장면. 모진 고문을 당하는 오스타프를 지켜보던 불리바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스타프의 절규에 대답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폴란드와 싸움을 계속한다.

결국 불리바는 폴란드에 붙잡혀 화형을 당하지만, 그러면서도 돌아가는 카자크들을 향해 다시 이곳에 돌아와 날뛰어 달라고 절규한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막막한 꼴통. 젊은 놈들 훈련시키자고 전쟁을 일으켜서, 그래서 그 훈련시킬 젊은 놈들이 다 죽어버리는 꼴을 보고도 반성하지 않는 사내. 어쩌면, 전쟁이 맞지 않았을지 모르는 두 아들들을 끌고와서, 하나는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죽여버리고 다른 하나는, 결국 적의 손에 고통을 받다 죽어가는 꼴을 보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름대로 그에게는 어떤 지켜야 할 가치가 있었을 것이고, 그 가치에 대해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며, 지금 시대에 와서도 그런 가치들을 나름 소중하게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시대에 뒤떨어져, 비극을 낳고 죽어가는 그를 보고 사나이의 로망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그를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아버지 상이, 이런 남자의 모습이 멋지고 호쾌하게 보이던 시대는 아마, 머지 않아 사라져 갈 것이다. 그 시대의 카자크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서의 가치라면 넘치도록 있겠지만, 이입을 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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