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인 무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목만 들어본 소설 중 하나다. 다행히도 중학생때 읽었던 소설이고, 이번에 다시 읽었다. 17년만의 일이다. 사실 처음 읽을 때에는 이게 어째서 그렇게 대단한 소설인건가, 우연적인 사건과 사건 하며, 마지막에 그 세 처녀가 입을 모아 “배워야 한다”고 하는 장면의 민망함까지, 어디로 봐서 이게 읽어야 하는 소설인가 하고 땅을 파며 읽었지만, 지금은 그당시 시대를 감안하면 혁명적이긴 했겠구나 하고 생각할 만큼은 여유가 생겼다.
수동적인, 문자 그대로 그 시대의 인물인 기생 영채와 신여성 선형. 그리고 신문물을 받아들인 지식인이면서도 영채의 정조에 대해 고민하는 이면을 보이는 형식. 이들이 시작은 연애에서, 끝으로는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깨인 지식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솔직히 지금 보면, 민망하다. 벗어서 민망한게 아니라 보다보면 민망한. 그런 것은 아예 대놓고 계몽소설인 상록수라든가, 그런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어떤, 미묘하고 곤란한 민망함이다. 어린시절 정혼한 형식을 위해, 기생 노릇을 하면서도 절개를 지키는 영채. 그리고 부유하고 잘나가는 신여성인 선형 사이에서 자신의 돈과 미모 없음을 한탄하는 형식. 그러던 중 영채가 강간을 당하고 유서를 남긴 채 떠나고, 형식은 영채를 잊고 선형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한다. 실의에 빠져 평양으로 가던 영채는 기차 안에서 신여성 병욱을 만나고, 그녀의 오빠에게 연정을 품기도 하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영채는 병욱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들이 일본과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탄 기차 안에서, 형식과 선영, 영채, 병욱은 운명처럼 만난다. 그리고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며, “우리가 하지요!”하고 사명감 넘치게 입 모아 말한다. 스스로 선택하는 사랑, 자유 연애라는 이름의 근대적인 한 걸음에서, 스스로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식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아아, 국문학사를 공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것은 알겠지만, 그냥 연애소설이면 연애를 하게 하란 말입니다, 춘원 선생님. 왜 막판 10%를 이렇게 닭살미묘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