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만은 브람스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슈만의 아내는 슈만 이상으로 재능있는 음악가였던 클라라 슈만이었는데, 그 시대의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결혼과 함께 그녀는 남편의 이름에 가려지고 시들어갔다.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을 사모하였다는 이야기는 음악에 관심이 없더라도 들어보았으리라. 미묘하게도 피아노 학원에 걸려있던 슈만과 클라라의 초상화는 젊었고, 음악책에 실려 있던 브람스의 초상화는 한 성격 하게 생긴 노인이었기 때문에, 브람스가 자신보다 연상이고 스승의 아내이며 스승에게 가려 시들어가는 클라라를 사모하였다는 것은 한참동안 내 머릿속에 제대로 된 이미지로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클라라는 슈만을 떠나지 않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슈만의 곡들을 세상에 알리며 살아갔다.
왜 그랬을까. 자신을 질투하고 그늘로 가려버린, 신경질적이고 짜증투성이인, 정신질환에까지 시달린 남자가 열네 살 어린 남자보다 나을 것은 또 무엇이길래. 나는 슈만의 곡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고, 브람스를 더 좋아했기에 클라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40년동안 결혼하지 않고 그녀만 바라보던 브람스의 사랑이 애처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 책은 물론 브람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클라라 슈만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실내장식가인 39세의 폴과 그 연인 로제가 나온다. 권태기에 접어든 중년의 연인. 하지만 구속을 싫어하는 로제는 폴과 결혼하지도 않고, 내킬때만 그녀의 집에 찾아가며 기회가 닿으면 젊은 미녀들과 어울린다. 어디로 보아도, 성실한 연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로제 때문에 폴은 깊은 고독을느낀다.
그런 그녀의 앞에, 마치 브람스처럼, 몽상적이며 젊은 시몽이 나타난다. 자신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남자. 폴과 시몽은 서로 배려하며 화사하고 반짝거리는 사랑을 하지만, 폴은 이상하게도 로제를 생각한다. 로제 역시도, 자신을 위해 늘 준비되어 있던 폴의 집을 생각하며, 그녀의 집에서 깨뜨렸던 반짝거리는 물건들(크리스탈 글라스라든가)을, 그리고 그녀가 준비해 두었던 묵직하고 작은 재떨이를 생각한다. 내던져도 깨지지 않는 자신의 싸구려 재떨이와는 다른. 솔직히, 로제는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으며 일방적인 감정을 폴에게 요구하고 있기는 했지만, 폴 역시도 로제를 그리워하는데야 답은 없다. 그리고 마침내, 시몽을 동반한 폴과 다른 젊은 여자를 동반한 로제가 식당에서 마주치고, 폴과 로제는 다시 만난다. 폴의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봄날과 같은 시몽을 떠나보내고, 폴과 로제는 권태롭지만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사랑일까. 순간적인 감정은 얼마나 덧없는지 알아버린 폴은, 이미 “늙어”버렸다.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모험에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 화려한 감정도 언젠가 퇴색될 것을 알아버린 서른 아홉 살에게는 구질구질하지만 안정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할 만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로맨스와는 다른, 이것은 “real”이라는 생각이 드는 선택. 아마도 보통은 폴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더러는 그리워하고 더러는 후회하면서도.
슬픔이여 안녕, 은 아직 십대였던 그녀가 십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그 감정의 흐름을 그린 것이니 그렇다고 쳐도, 스물 넷에 서른 아홉 먹은 여자의, 그 “늙어버린”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기쁨과 슬픔이 씨줄 날줄처럼 얽힌 인생이, 점차 빛 바래기 시작하는 그 날들을 미리 내어다본다는 것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