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어렸을 때 상으로 받았던 “세계의 명시”에 들어있던 코울리지의 시, “쿠빌라이 칸”을 떠올렸다.
쿠빌라이 칸은 재너두에
웅장한 환락의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거기에는 거룩한 강 알프가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 깊은 동굴을 통하여
태양이 비치지 않는 바다로 흘러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5마일의 두 배에 이르는 기름진 땅에는
성벽과 탑이 허리띠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에 비쳐 반짝이는 정원도 있었다.
숲은 언덕 만큼이나 오래 묵었고
양지바른 녹지가 흩어져 있었다.
세상 떠난 성인들과 더불어 사랑하고,그러나 오호! 삼나무 숲을 가로질러 초록 언덕을
비스듬히 기울어진 크나큰 신비를 지닌 대지의 균열이여!
황량한 곳이로다! 창백한 달빛 아래 요괴인 애인을
그리워하여 우는 여인이 출몰한 장소와도 같이
신성하면서도 마력을 지닌 장소다!
마치 대지가 가쁜 숨을 쉬며 헐떡이듯이
이 틈새로부터 계속 소란스럽게 용솟음 치면서
거대한 분수가 시시각각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 빠르게 끊어졌다 이어지는 분출의 한가운데
사방으로 흩어지는 우박과 같이, 또는 도리깨를
맞고 흩어지는 곡식단의 낱알처럼
춤추듯 튀고 있는 바위 속에서 단번에 그리고 끊임없이
거룩한 강으로 물을 계속 흘러 내고 있었다.마치 미로와 같이 구불구불한 5마일을
이 거룩한 강은 숲과 골짜기를 흘러서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 동굴에 이르러
생명없는 대양으로 소란하게 가라앉았다.
그 떠들썩한 소리 속에서 쿠빌라이 칸은
전쟁을 예언하는 조상의 목소리를 들었다.환락의 궁정 건물의 그림자는
물결 한가운데 떠서 흘렀고,
거기 솟아나는 샘물과 동굴로부터
뒤섞인 가락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진귀스러운 취향의 기적이었다.
얼음의 동굴의 있는 햇빛 쨍쨍 비치는 환락의 궁전!거문고를 든 아가씨를
나는 일찍기 환상에서 보았다.
그것은 아비시니아의 소녀였었다.
그 소녀는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아보라 산에 관하여 노래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 그 소녀의
음악과 노래를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너무 크나큰 환희에 이끌려
드높고 기나긴 음악 소리를 듣고서
공중에 저 궁전을 건설한 것이리니
바로 그 햇빛 쨍쨍 비치는 궁전! 그 얼음동굴!
음악 소리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크게 외치리라, 주의하라! 주의하라!
그의 불타듯 번쩍이는 눈, 그의 나부끼는 머리카락
그의 주위를 세 차례 돌고서
성스러운 두려움을 느끼며 눈을 감아라!
그는 꿀이슬을 먹었고
낙원의 밀크를 마시고 자라났느니라.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실재하지 않는 많은 도시들의 이야기를 떠벌이는 내용이다. 판타지이기도 하고, SF로 분류하기도 하여 직지 프로젝트에 링크되어 있기도 했으며, 그냥 죽 읽으면서 이게 무슨 이야기야 하고 감을 잡지 못하다가도 하나하나 보석처럼 세공된 도시의 이야기에 홀리는. 그런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도시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의 도시들은 대부분, 여성의 이름을 하고 있다. 클로에, 히파티아, 아르밀라, 에우페미아…… 이 이야기는 도시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환상의 여인들을 묘사한 것은 아닌지. 짧은 텍스트와 텍스트, 그 우미함을 씹어보며, 나는 어쩌면 작가가 도시에 대한 환상이 아닌, 소녀들에 대한 환상으로 이 글을 쓴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아마도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