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은 공포 소설이다.
아니, 죽이고 썰고 귀신이 나오는 공포가 아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등줄기에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다닌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가족신화, 무책임한 가족신화를 품은 멍청한 부모가, 자신들의 과오를 돌아보지 않고 모든 불행을 막내 아이에게 떠넘기며 정신적인 학대를 가하고, 그러면서도 아이를 버린 부모 소리는 듣고싶지 않다는 가족신화로 다시 아이를 데려오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어리석고 어리석으며 무참한 이야기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런 일이 현실에도 쌔고 널리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my god.
프리섹스와 이혼, 마약, 산아제한, 그런 1960년대의 모습들을 거부하고 아이를 많이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미고 싶어하는 데이비드와 해리엇. 그들은 데이비드의 이혼한 아버지의 원조를 받아 방이 여럿 있어서 아이들을 많이 낳아도 각자의 방을 줄 수 있고 휴가 때는 친척들을 초대할 수 있을 만큼 큰 집을 구입하고, 아이들을 낳기 시작한다.
슬슬, 기분나쁜 공포가 밀려들기 시작한다. 여기서의 공포라는 것은 20세기 초반 미국의 광고에서 어색할 정도로 활짝 웃고 있는, 그러니까 마치 마네킹처럼 웃는 가족들이 찍혀 있는 그런 광고 있잖은가. 그런 것 보면 공연히 오싹한데, 딱 그런 느낌이다.
거의 휴가때 마다 친척들은 임신으로 배가 불러 있는 해리엇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만큼 아름답지 못한 법, 그런 해리엇 때문에 친정 어머니는 어느새 산바라지와 손주들을 돌보는 일 때문에 식모살이를 하듯 이들 철없는 부부에게 붙들려 지내게 된다. 현실은 이것이나, 이상적인 가정을 꾸미는 데 골몰한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자신들의 현실이나 경제력으로는 이 이상 아이를 낳는 것이 민폐라는 것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터울을 두고 또다시 아이를 낳아야겠다고만 생각하고, 그 결심은 번번이 무너져 넷이나 낳아버리고 만다. 불쾌하다. 스텝포드 와이프같은 그런 사진들을 볼 때의, 이를 드러내고 있는 로봇같은 미인이 화목한 듯 연출한 가족신화가 어떤 민폐와 고통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조금의 여과도 없이 보여주니까. 여전히, 자신들의 행복을 재확인하듯 다운 증후군 아기를 낳은 친척을 동정하는 이 철없는 부부는, 다섯번째 아이를 임신한 무렵에야 조금씩 현실 앞에 힘겨움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그 다섯째 아이는, 원치 않던 아이였다.
따지고 보면 벤 자체가 해리엇의 생각대로 괴물이라던가, 이상한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던가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를 만들고 낳을 줄만 알았지 제 손으로 거의 돌보지 않았던, 주위 사람들의 희생으로 예쁘게 자라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며 아이를 낳을 수록 행복이 커지리라 믿고 아이를 낳았던 이 멍청한 여자는, 다른 네 아이들과는 조금 달리 태어나기 전부터 조금 달랐던 이 아이를 직접 돌보면서 현실 앞에 공포를 느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활동과잉인 아이가 1마일 가까이 뛰어가는 것을 뒤쫓으면서, 차가 저 아이를 치어 버렸으면, 그래서 지금의 고통이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부분에서는 코웃음이 쳐 질 지경이었다. 그 여자는 애를 넷이나 낳을 동안 한 번도 현실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벤이 태어났을 때 큰 아이가 겨우 학교에 갈 정도였으니 데이비드 역시 경제적인 고통을 비교적 덜 느끼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벤에게는 병원비가 필요한 그 물질적 고통을 벤에게 돌려버린 것이다. 좋다, 그렇게 하여 한 가족이 작살날 지경이 되었다고 치자. 데이비드는 가족의 행복과 평화와 현실을 지키기 위해 벤을 수용소에 갖다 맡기고, 다시 평화를 되찾은 이 가족들은 예전처럼 화목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를 버린 엄마는 되기 싫어서였다고밖에는 이해도 안 가는 저 멍청한 해리엇은 수용소에 찾아가 벤을 다시 데려오고, 집안 분위기는 더욱 엉망이 되어간다. 하지만 벤이 처음부터 구제불능은 아니었을 것이, 이 아이는 태어나기 전에는 원치 않았던 아이요, 태어난 뒤에는 엄마도 아빠도 괴물 취급이나 하며 따돌렸으며, 게다가 철 모르는 나이에 수용소에서 고통받으며, 죽음을 앞당기는 안정제들을 억지로 맞으며 죽어갈 뻔 하기까지 하였다. 지능은 떨어지지만, 벤은 그래도 자신을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주는 불량 청년 존과 그 친구들에게는 보통의 아이처럼 지낸다. 결국은, “자신의 욕심만 알고 그 욕심이 충족되지 않으면 괴물처럼 변하는” 벤은, 이기적이고 멍청한 부모 해리엇이고 데이비드다. 친정과 시댁에 민폐를 끼치면서도 커다란 집, 많은 아이들, 그리고 전통적인 집안살림들, 이야기 책에나 나올 법한 인형의 집을 꾸미고 싶었던 오만하고 독선적인 철없는 부모들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진정한 공포는, 벤의 존재가 아닌 저 해리엇과 데이비드다. 읽는 내내 두 부부를 묶어서 템즈 강에 가라앉히면 A부터 Z까지 모든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