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 한강, 창비

찌는 듯이 덥다 못해 원룸에서 곰팡이 냄새가 올라오던 날 이 책을 읽었다. 영혜라는 한 여성을 둘러싼 세 사람, 서로 거리감이 다른 세 가족의 관점에서 바라본 영혜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영혜는 어린 시절 자신을 물었던 개를 아버지가 잔인하게 도살하는 것을 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채식을 한다고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억지로 그녀를 붙잡게 하고 입에 고기를 쑤셔넣으려 한다. 마치 강간장면같이 역겹다.) 그에 대한 기억으로 영혜는 처음에는 육식을 거부하고, 그 다음에는 꽃, 혹은 나무, 식물이 되려고 한다.

첫 번째 이야기인 “채식주의자”는 더없이 역겹고 속물적인 남편이 아내인 영혜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다. 이 남자는 자기가 영혜와 결혼한 것이 그녀가 특별하지 않고 무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편안함을 다음과 같이 뻔뻔하게 말한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 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패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남자들과 스스로를 비교해 위축될 까닭도 없었다. 이십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다리와 팔뚝, 남모른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작은 성기까지, 그녀에게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이 남자에게는 꼭 영혜가 자신의 아내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그냥 “평범한 아내”만을 원했던 것이므로. 그 평범한 아내가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밥을 차리고, 컴퓨터 그래픽 학원의 보조강사 역할과 출판만화 말풍선에 식자를 넣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적으나마” 가계에 보탬이 되었으며, 자신에게 뭘 요구하지도 않고, 귀가시간이 늦는다고 잔소리를 하지도 않고, 이 남자가 TV를 볼 때 “표지를 열어보기도 싫을 만큼 따분해 보이는”책들을 읽을 뿐이라는 서술을 읽으며 이 얼마나 역겨운 새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아마도 가사 기능이 탑재된 섹스로봇 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닐까. 우웩.

두 번째 이야기인 “몽고 반점”을 보면서, 김동인의 “광화사”가 얼마나 낡은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무척 광화사 스러운데, 어릴 때 광화사를 읽으면서 “예술이란 이래야 하는 건가?”생각했던 것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싹 무너졌다. 예술이란 그래야 하는 게 아니라, 예술 한다면서 변명만 늘어놓는 놈들이 문제인 거지. 인혜의 남편인 비디오아트 작가는 자신의 욕망을 예술에의 열정과 호도하며 자기 자신마저 속이다가, 그야말로 인혜의 표현대로라면 “병든 아이”인 처제를 섹스 비디오에 담으려 하고, 그녀와 섹스한다. 아마도 옛날 소설이었다면, 이 남편은 진정한 예술을 위해 처제와의 금기를 범한 것이요, 그들을 발견하고 신고한 인혜는 진정한 예술을 모르는 무식한 마누라 정도로 치부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을 막기 위해서일지, 인혜 남편의 후배는 몸에 꽃을 그리고 영혜와 포즈를 잡는 것 까지는 흥미롭게 가담하지만, 섹스를 하라는 말에는 창녀라도 이러면 안된다며 돌아간다. 그런 점이 낡지 않게 느껴졌다.

마지막 이야기인 “나무 불꽃”은 언니인 인혜의 이야기다. 그녀는 말하자면 날벼락을 맞은 인물이다. 내 집 마련을 했고(예술가인 남편은 거기 그다지 기여한 게 없는데도 그 덕담은 남편에게 돌아간다) 가족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더니 굴이나 고기를 좋아하던 동생이 채식주의자가 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그 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했으며(이 대목의 묘사가 무척 강간같다. 선정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가 얼마나 역겨운 인간인지 보여주기 위한 것 처럼.) 동생은 칼을 꺼내 자해했다. 동생은 이혼을 했고, 아버지는 그 동생을 떠맡기를 거부했으며, 남편이라는 놈은 그 동생과 “붙어먹었”다. 남편을 신고하고 이혼을 했더니 가족들은 자신에게도 등을 돌렸다. (가부장제라는 건 얼마나, “정상적인 범주”안에서 살아가지 않는 자식들에게 가혹한가. 아이고오. 조금만 자기들 기준에서 틀어져도 마치 큰 죄라도 지은 것 처럼 쫓아내 버리고 말이야.) 그 와중에 인혜는 아들을 키우고, 자기 사업을 계속 해 나가면서, 미쳐버린 동생을 정신병원에 넣고 보호자로서의 도리를 해 나가고 있다. 모든 일을 자기가 떠안아야 하는 그녀는, 비록 친정에서 등을 돌렸을지언정 전통적인 장녀에 가깝다. 중간에 그녀는 영혜를 보며 자신이 어머니의 일을 나누어 하던 장녀였기에 아버지의 폭력에 덜 노출되었고, 영혜는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었음을, 그리고 자신이 사려깊은 게 아니라 비겁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앞의 두 이야기는 가해자가 곧 서술자인데, 이 이야기는 언니의 입을 빌어 아버지 역시 가해자임을 말하는 것 같다. 영혜를 미치게 한 것은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그녀를 욕망하는 남자라고 요약할 수 있는 걸까.

PS) 가부장제는, 아버지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 딸들은 잘도 등돌리고 포기하고 내치는데, 그들은 돌아온 탕아인 “아들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엄격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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