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 분량의 소설이었지만, 약간 두꺼운 사이즈의 한 권 정도로 압축이 되었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은 소설. 인간의 굴레를 완역판으로 읽을 때에도 늘어지는 부분들이 간혹 느껴졌는데, 이 소설도 약간 그렇다.
내용은 대략 아침드라마 부럽지 않은 치정. 인간 희극 중 한 편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해가 갔다. 1838년 파리에서, 유로 남작의 사돈이자 호색한인 유로 남작에게 애인을 빼앗긴 원한을 잊지 않고 있던 상인 출신의 쿠르벨이 남작 부인을 손에 넣어 유로 남작에게 보복하려 하지만, 평민 출신으로 남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는 남작 부인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남작 부인은 유로 남작이 정부들에게 돈을 쏟아부은 나머지 딸인 오르탕스의 지참금도 부족하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유로 남작은 사귀던 정부들을 정리하고 조용히 살고자 한다.
남작부인의 사촌인 리즈베트는 아름다운 자신의 사촌과 자신의 인생을 비교하며 종종 질투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벤세슬라스라는 망명 귀족 출신의 청년 예술가를 보고 그에게 좋게 말해 모성적 애정이고 잘못 발달하면 “미저리”에 나오는 애니가 될 수도 있는 사랑과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지참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가난하지만 앞으로 부와 명성을 거머쥘 수 있는 장래성 있는 남자”를 찾던 오르탕스가 벤세슬라스와 결혼하자, 리즈베트는 남작가를 망치겠다고 생각하며 남작이 관심을 갖게 된 관리의 아내, 마르네프 부인과의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남작은 물론 쿠르벨에 벤세슬라스, 그런데다 몬테스 남작까지, 마르네프 부인은 여러 남자들을 유혹하며 그들의 재산을 긁어모으고, 그녀의 남편인 마르네프는 남작을 협박하여 자신을 과장으로 승진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남작은 공금에 손을 대고, 남작의 형인 유로 원수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재산으로 그 불명예를 씻으려 하며, 남작은 도망친다. 원수와 결혼할 계획을 세우던 리즈베트의 희망을 저버리고 유로 원수는 결국 홧병으로 죽는다.
원수가 죽은 뒤 그의 지인들은 유로 남작의 아들이자 유능한 변호사인 빅토랑이 나랏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빅토랑의 노력과 남작부인과 오르탕스, 세레스틴 등의 검약으로 남작가는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설 조짐을 보인다. 이때 세레스틴의 아버지인 쿠르벨이 마르네프 부인과 결혼하겠다고 말하며 다시 갈등이 벌어진다. 아침드라마도 이쯤 되면 사골국이라고 한다. 빅토랑에게 의문의 노파가 찾아오고, 빅토랑이 그와 손을 잡자 노파는 몬테스 남작 쪽으로 손을 써 마르네프 부인과 쿠르벨이 외국의 풍토병에 걸려 죽게 만든다. 결혼계약이 성립한 뒤 마르네프 부인이 먼저 죽고 그 뒤로 쿠르벨이 죽음으로써 그들의 재산을 세레스틴과 빅토랑 부부가 상속하게 된다.
한편 도망친 남작은 예전에 사귀었던 여가수의 도움을 받아 숨어 지내면서도 여전히 평민 아가씨 등에게 손을 대며 살고 있었다. 빈민 구제를 다니던 남작 부인은 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아가씨가 늙은 서기와 함께 동거하고 있음을 알고 찾아가 남편을 만난다. 되돌아온 남작은 빚을 갚고 재산을 되찾은 것에 기뻐하지만, 곧 집안의 가정부와 또다시 바람을 피운다. 남작이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남작부인이 죽으면 너와 결혼하겠다”며 가정부를 유혹하는 것을 보고 남작부인은 홧병으로 죽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작에게 원망어린 말을 쏟고, 부인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작은 가정부와 재혼한다.
……자, 아침드라마나 뭐 그런게 아닙니다. 발자크가 쓴 것이고요.
……중간중간 늘어지는 부분들은 좀 쳐내도 되었겠지만, 전에 듣기에 그 옛날의 소설들은 분량으로 원고료를 받았다고 하니, 뭐. 아, 리즈베트는 남작이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습니다.
그러니 치정극이니 호모물이니 다, 고전을 열심히 읽으면 거기도 다 있습니다.
그리고 완역본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고. 인간의 굴레도 축약본 쪽이 더 산뜻하다고 느껴졌으니까. 길어서 좋은 게 있고 길어서 곤란한게 있다.